남성의 승부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남성이 살아남는 법

by 백재민 작가

우리는 오랫동안 남성의 승부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씨름해왔다. 한쪽에서는 이를 원시적 본능으로

치부하며 억압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미덕으로 포장하며 찬양했다. 그러나 둘 다 틀렸다. 문제는 승부욕 자체가 아니라 그 방향이었다.


특정 페미니즘담론들이 범한 오류 중 하나는 남성의 경쟁심과 승부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부정적으로만 해석했다는 점이다.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욕구, 동성 간의 서열다툼, 지배욕의 발현으로만 바라보면서, 경쟁심이 가진 건설적 측면까지 함께 부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독성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대한 비판은 필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도전정신이나 성취욕구 같은 긍정적 동력까지 문제시하는 것은 아이를 씻기다가 목욕물과 함께 버리는 격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교육현장에서 도입된 '제로 톨러런스'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의 거친놀이(rough play)나 경쟁적 게임을 일률적으로 금지했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드는 것조차 징계대상이 됐다.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는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에서 이러한 정책들이 남학생의 자연스러운 에너지 발산과 경쟁욕구를 병리화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OECD 교육통계를 보면, 이 시기를 거치며 남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여학생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ADHD 진단율은 급증했다.


교육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의 한계는 명확하다. 지금까지의 페미니즘교육은 경쟁심의 병리적 발현과 건강한 도전정신을 구분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남성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자신의 야망과 성취욕구를 죄악시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건강한 남성성 내지는 남성상을 형성하는데 질곡을 형성해왔다.


도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맹점을 파악하는 단서 하나를 제공한다. 책은 인류가 다른 영장류를 제치고 지구의 지배종이 된 것은 공격성이 아니라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생존에 유리했던 것은 더 강해서가 아니라 더 잘 협력했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적자생존'이 그저 '강자생존'을 의미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남성의 승부욕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까? 답은 경쟁의 대상을 전환하는 데 있다. 성과나 직위를 두고 경쟁 중인 동료를 기싸움이나 정치질로 제압하려는 충동을 어제의 나를 넘어서려는 열망으로 바꾸는 것이다. 실제로 최고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타인과의 비교보다 자기자신의 성장에 집중한다.


운동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마라톤 선수 킵초게는 "나의 유일한 경쟁자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마라톤에서 2시간의 벽을 깨는 데 근접했다. 이런 자세는 역설적으로 동료선수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전체적인 수준향상을 이끌어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타인과의 경쟁에만 몰두하면 상대가 없을 때 동력을 잃게 된다. 반면 자기성장에 집중하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이런 태도는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서로의 성장을 돕는 상호조력자가 되고, 함께 한계를 넘어서는 동지가 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가 좋은 예다. 표면적으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가 강하다. 스타트업들이 서로의 실패경험을 공유하고,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것은 그들의 진짜 경쟁상대가 서로가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협력과 건설적인 경쟁은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발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전환이 쉬운 것은 아니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상대평가와 획일적인 서열화에 익숙하고, 남을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제로섬사고가 만연해 있다. 교육시스템부터 기업문화까지, 구조적으로 타인과의 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인 개선의지와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고도로 발전된 사회는 더 이상 약육강식의 정글이라 보기 어렵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협력과 공감, 상호부조와 연대가 필수다. 기후변화와 경제적 불평등 같이 우리에게 당면해 있는 거대한 도전과제들은 제로섬 게임에서 최종우승한 특정인물의 영웅적 입지나 지도력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집단지성과 협동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남성의 승부욕은 파괴적 경쟁이 아닌 건설적인 도전으로, 타인에 대한 지배욕이 아닌 성장욕으로, 병리적인 공격성이 아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미 수많은 대한민국남성이 체화하고 있듯, 이 같은 노력은 우리가 알던 남성성이 더 성숙하고 생산적인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질문을 해왔다. "어떻게 남을 짓밟고 올라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역발상의 진화론적인 입장 역시도, 결국 진정으로 강한사람은 타인을 짓밟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며 타인과 함께 성장해온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남성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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