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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청년정치인의 실패보고서

나락 그 다음은?

by 백재민 작가

"나는 실패했다.


스물둘의 나이에 정당 위원장이 되었고,

스물셋의 나이에 그 자리를 버렸다.


통장 잔고 16,000원.

임기 5개월을 남기고.


이 글은 그 실패의 기록이다."


2022년 4월, 대전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그때의 나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재떨이에는 구겨진 꽁초가 파인애플처럼 겹겹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얼음이 녹아 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렸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는 재미도, 세상과 조직을 향해 핏대를 세우던 분노도, 이제는 다 타버린 재처럼 하얗게 식어버린 듯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마치 불씨가 완전히 꺼져버린 텅 빈 화로처럼, 나는 그저 도시의 소음 속에 멍하니 부유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위원장 임기 1년 5개월 중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남은 임기는 5개월. 함께 일하던 동료는 "지방선거 앞두고 있는데 조금만 더 버티면 책임감 있는 이미지가 남지 않겠냐"며 조언했다. 당장 사퇴하면 "끈기가 없다"고 손가락질 받기 딱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 5개월을 쥐죽은 듯이 조용히 보낼 생각도, 그렇다고 해서 정당활동을 이어나갈 '실탄'도 없었다.


가장 솔직하고 결정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그것은 나의 가난이었다. 통장잔고는 매일 마시던 커피값과 담배값으로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진로계획은 고사하고 당장 다음 달 일정도 불투명했다. 정치적 신념은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 정당인이라는 타이틀은 나의 발이 되어주던 버스비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가장 찌질하고 비루한 이유, 바로 가난 때문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만큼은 사회 탓을 했다. '청년정치를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불평불만만 내놓았다. 때마침 청년정의당 대표의 갑질 논란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정치동아리 소리 듣는 정당에게 도덕적 결함은 지방선거 참패를 확정했다. 내가 속한 의견그룹 '새로운진보'는 정의당 내에서 고립되어 목소리를 잃었다.


물론, 그것들만이 실패의 전부는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역량이 부족했다. 그저 반항심과 정의감만으로는 조직을 이끌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예산 편성, 인적 네트워크 구축, 사업 기획, 갈등 조정... 위원장에게 요구되는 실무 능력을 나는 갖추지 못했다. 대학을 두 번이나 자퇴하고,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던 스물둘의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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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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