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식민지를 '근대'라 불렀나

식민지근대화론과 그 반대편의 100년

by 백재민 작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짚어두고 싶은 게 있다. 흔히 뉴라이트의 등장과 그 학술적 변천을 두고 "학문이 정치에 오염됐다"는 식으로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표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문이 정치에 복무하는 일은 오염이 아니라 본디 그런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표현을 안 할 뿐 누구나 어떤 입장 위에 서 있다. 명문대 교수 출신이 보수와 진보 양쪽 정당의 비례대표로 진출하고, 학회 간판을 단 채 정권의 두뇌 역할을 맡아온 사례가 한국 정치에 줄을 잇는다. 학술과 정치는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된 척할 뿐이다. 뉴라이트가 정치적 기획임을 꼬집는 일이 의미 있으려면, 그 반대편 역시 또 다른 정치적 기획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식민지를 둘러싼 100년의 학술 전쟁은 사실 정치 전쟁의 다른 이름이다. 이 글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도 곧 분명해질 테다. 솔직히 그 편에 서 있다고 미리 말해두는 편이 점잖은 척 객관을 가장하는 것보다 정직하다.


근래 들어 '사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학문이 정치에 복무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둘 다 위험한 단어 취급을 받는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20세기가 사상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인 세기였기 때문이다. 나치즘은 인종우생학이라는 학술의 외피를 두르고 600만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냈다.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학설을 빌려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수백만을 몰아넣었다. 한국에서는 반공이 학문과 결합해 보도연맹 학살을 정당화했고, 그 반대편에서 주체사상이 학술의 외피를 두른 채 한 가문의 세습을 이론화했다. 사상이 사람을 죽이고 학문이 그 죽음을 정당화한 기억이 한 세기 분량으로 쌓여 있다. 이 기억의 무게가 사상이라는 단어자체를 기피 단어로 만든 셈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이념의 종언'이라는 담론도 한몫했다. 거대서사가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자기실현과 시장의 효율성이 들어왔다. "사상이란 단어가 이제 한물갔다"는 분위기가 학계와 언론에 자리 잡았다. 학자가 정권에 발을 들이면 폴리페서라는 멸칭이 따라붙었고,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학자는 어딘가 의심스러운 사람이 됐다. 신자유주의는 '탈정치화'라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기획을 추진했고, 한국의 학계와 시민사회는 그 기획을 자기 미덕으로 받아들였다. 이 분위기 속에서 학문이 정치에 복무한다는 말은 '학문이 더럽혀진다'와 거의 동의어가 됐다.


그러나 학문이 정치에 복무해 좋은 결과를 만든 사례는 멀리 갈 것 없이 20세기 한복판에 줄을 잇는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가 1936년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펴낸 일은 학술적 사건인 동시에 정치적 사건이었다. 시장의 자동조절을 신앙처럼 떠받들던 자유방임경제학을 학술의 영역에서 무너뜨림으로써, 미국 뉴딜과 전후 서구복지국가의 이론적 지반을 깔았다. 같은 시기 영국의 사회정책학자 베버리지가 펴낸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는 곧 영국 국민건강서비스 설립의 청사진이 됐다. 스웨덴에서는 군나르 뮈르달과 알바 뮈르달 부부의 인구·복지 연구가 사민당의 정책 강령으로 곧장 흡수되어, 오늘날 한국진보가 부러워하는 그 복지국가의 기초가 됐다. 이들의 학문은 정치에 복무했고, 그 복무 덕분에 수억 명이 좀 더 인간답게 살게 됐다.


한국에도 사례가 없지 않다. 해방 직후 조봉암을 중심으로 설계된 농지개혁의 이론적 토대는 농민의 정치적 권리 회복으로 이어졌다. 1960~70년대 변형윤, 박현채로 대표되는 민족경제론 학자들의 글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맞서는 노동·민중 진영의 이론적 무기가 됐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은 한국 진보운동의 학술적 토대를 빚었고, 그 논쟁에서 자기 입장을 정리한 학자들이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두뇌 역할을 했다. 학문이 정치에 복무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학문과 정치의 결합 자체가 아니라 그 결합이 어떤 목적을 향하느냐에 있다. 핵무기 경쟁이 다시 가속화되고, 트럼프 이후 미국이 자유무역과 동맹의 신뢰를 흔들고, 유럽이 극우 포퓰리즘의 파도를 맞고 있는 지금의 국제사회에서 학문이 할 수 있는 일은 '중립'을 가장하고 도서관에 숨는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 앞에서 어떤 경제모델이 인간의 생존과 양립 가능한가를 따지는 일, 인공지능 자본이 노동을 무력화하는 시대에 어떤 분배 체계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가를 묻는 일, 그리고 식민지·전쟁·학살의 과거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 미래의 폭력을 막을 수 있는가를 정리하는 일이 모두 학문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기여다. 사상이 위험한 게 아니라 분별없는 사상이 위험한 것이다. 학문이 위험한 게 아니라 자기가 어떤 정치에 복무하는지 모르는 학문이 위험한 것이다. 학문이 가장 무서워해야 할 일은 정치에 복무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가장 나쁜 정치에 복무하는 일이다.


뉴라이트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면 새로운 우파, 그러니까 기성보수와는 다른 어떤 산뜻한 무언가를 떠올릴 법하다. 실상은 좀 다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뉴라이트는 1960년대 미국 신보수주의나 1970~80년대 영국 대처리즘과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적 변종이다. 신보수주의의 외피를 빌려, 한국 우파가 1980년대 이후 잃어버린 사상적 지반을 재구축하려고 만든 자생적 사조에 가깝다. 선거에서의 패배에서 출발한 학술운동이라는 뜻이다.


뉴라이트의 모태를 거슬러 올라가면 의외로 좌파학자들이 등장한다. 1980년대까지 사회구성체논쟁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가까운 좌파민족경제론을 펴던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그 시작점에 있다. 그중 핵심에 있던 한 인물이 1980년대 중후반 일본도쿄대학에 객원교수로 머물면서 일본동아시아경제사 학자들의 '중진자본주의론'을 접한다. 핵심은 간단했다. 한국자본주의는 식민지시기에 이미 일정한 토대가 마련되었고, 그 토대 위에서 1960~80년대 고도성장이 가능했다는 시각. 좌파였던 그는 이 만남 이후 노선을 180도 돌린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백재민 작가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6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