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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싫어하는 언어로 쓴다는 것

루쉰도 루쉰의 글쓰기도 공산당에 복무하지 않았다

by 백재민 작가

2022년, 통장잔고 16,200원. 정의당내 청년조직 지역위원장직을 사퇴한 나는 브런치에 글을쓰기 시작했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고 돈이 되는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만큼은,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마지막 남은 자유였다.

KakaoTalk_20251125_123921667.jpg 브런치북 [나는 반골입니다] 24화 아웃트로 중 일부

1921년, 두명의 문인도 비슷한 자유를 찾고 있었다. 한명은 상하이 임시정부를 떠나 경성으로 돌아온 이광수였고, 또 한 명은 일본 센다이의과대학을 그만두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주수인(루쉰)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에서 근대문명을 목격했고, 낙후된 자국민에 절망했으며,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청년 루쉰

그런데 20년 뒤,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라는 이름으로 조선청년을 전쟁터로 내몰고 있었다. 반면 루쉰은 1936년 상하이에서 "중국인에게 드리운 전근대성은 내 마음속 슬픔보다 짙다"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같은 출발점에서 왜 이렇게 다른 길을 걸었을까? 재능의 차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단 하나, 누구를 위해 글을 썼는가에 있었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표면적으로는 정신병자의 망상을 다룬소설이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나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그는 역사책을 펼쳐본다. 거기에는 '인의도덕'이라는 글자가 빼곡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글자들 사이사이에서 사람을 먹는다는 두 글자가 보인다.


루쉰은 이 책을 통해 유교윤리체계 자체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구조라고 말한다. 효도라는 이름으로 자식은 부모의 뜻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고, 열녀라는 이름으로 여성은 남편이 죽으면 따라죽어야 했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폭력을 견뎌야 했다.

사진은 아편전쟁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부패한 관료사회, 그리고 그 부패를 체득하고 마약을 즐기던 청조 말기의 모습을 잘그려낸다.

미친사람만 이 진실을 본다. 정상인들은 모두 '희생양 삼을 제물'을 올리며 우상에 경배하면서도, 그러한 사회를 '문명'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아이들을 구하라..."


루쉰이 보았던 식인의 풍습은 사라졌나? 나는 아니라고 본다. 2025년의 식인은 능력주의라는 세련된 포장지에 가려져있다. '네가 가난한 건 노력이 부족해서야', '억울하면 성공하든가'라는 말들은 유교의 예법보다 더 잔인하게 사람을 뜯어먹는다. 과거의 식인이 육체를 파먹었다면, 현대의 식인은 패배자의 자존감을 파먹는다. 시스템이 만든 불평등을 파악하기도 이전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아귀도에 갇혀있다. 루쉰이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친 것은, 다음세대를 이 도마위에 희생양으로 올리지 말라는 의미다.


루쉰이 바란 독자는

아직 시스템에 완전히 물들지 않은 세대,

다음세대를 향해있다.


1920년대 즈음해서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발표한다. 이광수는 이 책에서 조선인은 나태하고 이기적이며 책임감이 없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일본의 문명을 배워 스스로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수는 안창호의 [민족개조론]을 게승하면서도 이를 일제가 듣기좋게 순화한다.

진단은 언뜻보면 그럴싸하다. 실제로 조선사회에는 형식주의와 체면문화, 공동체의식의 부재가 만연했다. 문제는 처방전이었다. 같은 동포를 환자취급한 것도 못들어주겠는데 환자라고 호명한 조선인을 진단하면서 처방전은 의사인 일본에게 맡겼다. 이 글쓰기의 목적은 처음부터 지식인과 권력자를 향했다. 조선민족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 이 질문 자체가 이미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개조의 주체는 계몽된 엘리트고 개조의 대상은 무지한 민중이었다.


오늘날 서점을 꽉채운 자기계발서들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닮았다. 세상의 모순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니 "너 자신을 개조하라"고 윽박지른다. 어느순간부터 사회를 바꾸자는 말은 촌스러워졌다. 나를 채찍질해서 성공하겠다는 말은 권력이 가장 좋아하는, 가장 안전한 형태의 진로임에도 말이다.


루쉰은 [아큐정전]을 발표한다. 주인공 아큐는 맞아놓고도 내가 이겼다고 외치는 인물이다. 요즘으로 치면 회사에서 쫓겨나고도 내가 먼저 나간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랄까. 이 책을통해 루쉰 역시 중국인의 병폐를 진단했다. 권력에 굴종하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태도를, 약자를 짓밟으며 우월감을 느끼는 비겁함을 중국의 역사와 사회문화를 언급해가며 진단한다. 그렇게 진단내려놓고도 루쉰은 처방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의문점을 독자들에게 공유한다. 환기도 안되는방에 갇힌 사람들이 질식사할 운명이라면 깨워서 고통스럽게 죽게하는 것과 재운채로 편하게 죽게 하는 것 중 뭐가 나을까?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어차피 답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을 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지식으로 민중을 깨운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나? 오히려 절망만 키우는 게 아닐까? 루쉰은 계몽주의의 딜레마를 정직하게 인정했다. 자기자신 앞에서 솔직했다. '깨운다고 달라질까?'라는 의문에 집중했다.


반면 이광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일본이라는 명확한 롤모델을 내세웠다. 루쉰은 문제만 드러내고 해결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전자는 독자를 선도하고 후자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광수는 지식층이나 총독부와 일제의 유력자를 독자로 상정했고 루쉰은 권력을 비판하며 다음세대를 독자로 상정했다.


루쉰은 짐짓 정직했던 모양이다 그의 문학은 큰일 앞에서의 무력함을 숨기지 않았다. 글은 총알을 막지 못한다. 공권력에 의해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글쓰기가 뭘할수 있나. 그럼에도 그는 망명생활 내내 글을 썼다. 일본군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와중에도 국민당의 검열과 좌익내부의 교조주의 사이에서도 갈등한다.


1930년 루쉰은 중국좌익작가연맹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당시 좌련은 사실상 공산당의 관변단체였다. 많은 이들이 루쉰을 공산주의문학가로 분류하지만 정작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누구의 지시도 받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루쉰은 좌련내부의 교조주의를 비판했다. 일부 젊은작가들이 노동자 농민만 주인공으로 삼아야 한다거나 모든 작품은 혁명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그는 문학은 선전도구가 아니라며 재반박한다.


마오쩌둥은 옌안 정풍운동에서 문예는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루쉰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분명 반대했을 것이다. 마오는 루쉰을 혁명문학의 기수로 추켜세웠다. 당연 마오체제의 선전을 위해서다. 정작 루쉰의 문학은 어떤 권력에도 복무하지 않는다. 이광수가 총독부의 논리를 내면화했다면 루쉰은 서구와 중국, 그리고 강대국으로 떠오른 일제의 사상과 지식을 참고하되 이를 자신의 것으로 승화한다. 당대 중국공산당의 논리마저 거부했다. 비할바는 못되지만 나부터가 배짱이 부족해서 권력에 반대하기 쉽지않다. 그게 표준적인 사람이다. 이광수 역시 그런 보통사람이었다.

1003739766967744839.jpg 문예좌담회 마감직후 찍은 단체사진(정풍운동)

루쉰과 이광수 사이에 중간은 없었을까?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 말이다. 중립을 자처하는 이들은 자신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관찰자라고 생각한다. 갈등의 양편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중립적인 위치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 상태를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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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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