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업무를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2030세대 대부분이 정치에 관심을 끊었다. 투표율은 역대최저를 기록했고, 정당가입률은 1%도 안 됐다. 촛불집회로 정권을 바꿨던 세대가 불과 몇년만에 정치에 등을 돌렸다.
보수진영은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진보진영은 "청년들의 정치의식이 부족하다"고 한탄했다. 두진단 모두 정확하지 않아보였다.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정치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를 옹호함]에서 정치를 '문명사회의 선물'이라고 규정한다. 크릭에게있어 정치란 서로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폭력이 아닌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치가 사라지면 두가지 중 하나가 남는다. 독재 아니면 내전.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좌파는 제3의길을 제시했다. 정치가 해야될 일을 자유시장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자유시장이 알아서 해결한다, 정부의 권한은 작을수록 좋다, 시장규제는 사회악이다는 논리 아래서 정치의 영역은 점점 축소됐다.
이쯤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도 자유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이지 않나? 민영화로 서비스가 좋아진 것도 있잖아. 맞다. 일부영역에서는 그렇다. 국유로 운영되던 통신사 민영화 이후 휴대폰요금이 내려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전기를 민영화한 미국텍사스 사례에서는 2021년 한파때 전기료가 100배 폭등했다. 돈없는 사람들은 냉골같은 집에서 벌벌떨어야했다. 영국같은 경우는 철도민영화 후 요금이 두배 올랐고, 지연은 일상이 됐다.
효율. 누구를 위한 효율일까? 주주를 위한 효율이지, 서민을 위한 효율이 아니지 않나. 이윤이 나지 않으면 서비스는 끊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시장은 가난한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부역할 축소' 이후에는 시민의 권리였던 것들이 하나씩 상품으로 바뀌었다.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병원은 환자의 치료보다 수익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학교는 교육의 질보다 기업에 인재를 공급하는 취업률로 평가받는다. 공공기관마저 기업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윤을 못 내면 비효율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이제 경쟁은 숨쉬듯 자연스럽다. 협력보다 경쟁, 연대보다 개인의 성취가 중요해졌다. 동료는 경쟁자가 됐고, 이웃은 비교대상이 됐다.
정치를 되살린다는 건 거창한 개혁안을 만드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본 정치의 진짜 출발점은, 삶의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너도 그랬어?” 하며 깔깔웃는 시간이 모이는 시간에 가까웠다.
경쟁이 일상인 사회에서는 그 짧은 시간도 귀하다.
삶이 각자도생의 방으로 쪼개진 만큼 우리는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는 경험을 잃었다.
나는 정치의 소멸이 제도이전에 ‘경험의 단절’에서 시작했다고 믿는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총리는 "사회같은 건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만 있을 뿐"이라고 못박는다.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은 "정부의 자유시장개입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자체"라고 엄포를 놨다. 두 국가원수의 선포대로 영미권모델이 내세운 논리는 간단했다. 정부를 통한 집합주의적 해결보다 개인의 선택이 우월하다는 것이다.
물론 영미권 신자유주의모델이 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온상이 됐고, 런던의 금융가는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다. 미국의 대학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고, 영국의 창업 생태계는 활발하다. 하지만 이 글은 성공사례보다 폐해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그 성공의 이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제되고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빛나는 성공사례들이 만들어낸 그림자, 그 어두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혁신과 효율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불평등, 그것이 이 글의 초점이다.
여기서 의문점 몇가지가 추려진다.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영미권 모델, 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될 때동안 복지국가로 그 세상을 움직였던 좌파와 진보는 뭐하고 있었나.하는 것이 의문점이었다.
1990년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자 전세계 진보진영은 혼란에 빠졌다. 자본주의외에 대안은 없다는 마가렛 대처의 노선설정이 대세가 되면서 진보좌파는 양분된다 '타협과 강경' 사이에서 논쟁이 일었다.
주요 좌파지식인들과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은 그닥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가 이론을 만들고 토니블레어가 실천한 '제3의 길'이 그렇다. 제 3의길의 논리는 이렇다. "시장의 효율성을 인정하자. 대신 우리는 그 효율좋은 생산성으로 나온 결과물을 복지로 나눠주면 된다."는 것이다.
논리자체는 그럴싸했다. 그러나 실제정책에서 이어진 양상은 사실상 항복선언과 다름없었다. 진보는 더 이상 자본이라는 거대한 상대와 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기업하기 좋은나라를 만드는 '유능한 관리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사회경제적 평등을 외치던 목소리는 쏙 들어갔고, 그 빈자리는 문화투쟁과 정체성 정치가 채웠다.
결과는 참혹했다. 좌파가 인권과 환경에만 몰두하는 사이, 신자유주의는 거침없이 확대된다. 내가 몸담았던 진보정당의 실패도 이 흐름 안에 편입된다. 우리는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개혁가라기 보다, 초부유층이 운영하는 세계에서 관리자 내지는 집사가 되려했다.
그 결과 세상은 우리에게서 '시민증'을 뺏고 '신용카드'를 쥐여준다. 세상이 마음에 안들면 투표를 하는게 아니라 '불매운동'을 하거나 '돈쭐'을 낸다. 정의구현도 구매력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가 됐다. 돈이 없으면 투표권의 힘도 , 발언권의 소리도, 개인의 존재감도 하락한다. 금권정치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2023년 여름, 하청에서 일하는 대학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고된노동에 지쳐보였다. 그러면서도 노조하라는 나의 제안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노조는 불순하고 고립되기 십상이라는 인식이 군사정권주도의 경제에서 신자유주의체제로 입지를 굳힌 사회의 정치의식을 압축한다. 쪼메 건들거려도 착실했던 선배의 제스처에 60년묵은 체념이 담긴듯 느껴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니면 그 이전부터 일하던 사람들은 "노조만들면 짤리거나 회사망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테니까.
실제로 경제를 망친요소는 따로있다. 그런데 책임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과도하게 인상된 월급, 경직된 노동시장이 모두 노동자 탓이 됐다. 정리해고가 합법이 됐다. 비정규직이 쏟아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경영진의 언어로 그럴싸한 용어가 나온다. 손쉽게 해고하고 최저임금인상 정책을 억제하는 일이 '구조조정',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용어로 희석된 것.
선배가 두려워했던 건 노조의 불순함이었을까. 노조를 만들어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오히려 열심히 쌓아온 경력과 노하우를 모두 부정당하고 손쉽게 짤리는 일을 두려워한 건 아닐까. 그 고개휘젔던 모습에서 60년 세월의 무력감이 새삼스러웠다.
우리는 늘 ‘큰 정치’만 정치라고 배웠다.
정권교체, 경제성장률, 거대담론의 격렬한 충돌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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