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과 비극사이에서
2021년 봄, 대한민국에는 두 명의 청년이 있었다.
한 명은 22세의 강도영이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했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날 처지였다. 그는 아버지를 방치했고, 아버지는 결국 사망했다. 강도영은 살인죄로 기소된다.
강도영의 이름 뒤에는 번호표처럼 간단한 판결문만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흔히 범죄를 개인의 도덕성으로만 치부하고만다. 그러나 여러 범죄의 원인을 따라가다보면 사실 안전망이 미흡한 말로지 않았나. 한 가족의 비극이 '살인'으로 규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제도적 실패와 경제적 압박이 그를 몰아넣었는지를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의 비극을 도덕적 교훈으로만 소비할 뿐이다.
다른 한명은 국회의원 곽상도의 아들이다. 그는 화천대유에서 대리급직원으로 근무하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50억이라는 액수는 제도와 연결된 특권의 크기가 아닐까. 같은 '청년'이라 엮이면서도 누군가는 법·제도·인맥의 촘촘한 보호를 통해 막대한 자본을 얻고, 다른 누군가는 같은 제도에서 보호받지 못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같은 해, 같은나라, 같은연령대의 두사람. 언론은 이 둘을 묶어 'MZ세대'또는 '청년세대'라고 불렀다. '세대'라는 단어는 편리하다. 물적기반이 판이한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버리면 되니까. 그러나 그 편리함은 때로 안목을 가린다. 세대 프레임은 감정과 문화의 공통점을 포착하면서도 물질적 조건과 권력의분포를 흐려왔다. 이상한 일이다. 퇴직금 명목의 50억과 숫자로 형언할 수 없는 비극 사이의 거리가 20대와 50대 사이의 거리보다 가까울 리 없는데 말이다.
청년은 하나의 범주에 묶인 이질적인 존재의 모음이다
프랑스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당시의 청년세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세대라는 집단을 사회범주로 묶어 퉁치는 일은 20대 강남좌파와 20대 생산직극우를 한 데 묶어 청년세대로 퉁치는 일과 다르지 않았나보다. 20대재벌 3세와 20대 편의점알바생을 같은 범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 기준으로 둬야할 것은 나이가 아니라 계급이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한국적 맥락에서 문화자본은 '어떤 대학을 나왔는가'만을 뜻하지 않는다. 부모의 직장, 동네의 네트워크, 비공식적 도움의 손길이 시험성적과 스펙 뒤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다. 우리는 흔히 '노력'으로 설명되는 결과의 이면에 누가 어떤 자원을 물려주었는지를 함께 읽어야 한다. 어떤국가에서 태어나는가, 어떤부모를 만나는가에 따라 성공여부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을 교육의 질, 사회생활에서의 네트워크, 심지어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의 유무까지 결정한다는게 부르디외의 결론이다.
같은 성실함도 서로 다른 조건에서 발휘된다. 명문대 교수의 자녀는 '공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의사 집안의 아이는 의대 준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릴 때부터 간접경험한다.
2021년의 한국정치는 세대론에 가려져 그러한 계급을 보지 못했다. 세대론은 직관적이다. 젊음 대 기성이라는 대립구도는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래서 청년 VS 586이라는 구도가 지배적이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되자, 언론은 'MZ세대의 반란'이라 붕 띄운다. 민주진보진영도 박지현, 류호정, 장혜영 같은 청년의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양측의 전제는 같았다. 세대갈등이 한국정치의 핵심이라는 믿음에서 같았다. 하지만 이 같은 구도는 진보진영이 강조해야 할 강도영과 곽상도 아들사이의 격차를 가린다.
2021년의 한국만 그랬을까? 현대 청년정치의 원형은 1968년 5월 파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파리의 소르본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금지를 금지하라!"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학생시위는 곧 노동자총파업으로 이어졌다. 르노공장이 멈췄다. 전국에서 천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혁명이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자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학생들과 달리 노동자들은 월급인상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체제전복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했지만 노동자들은 업무여건개선을 원했다. 두 집단이 사회정의를 바라보는 관점과 형태가 달랐던 거다. 당시 프랑스에서 대학진학률은 전체인구의 10% 미만이었다. 소르본대학생은 명백한 지적 엘리트였다. 그 지적 엘리트의 급진적인 목표는 조립라인에서 불량품을 줄여야하는 노동자에게는 낯선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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