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짝이 되어버린 세대, 그렇게 되어갈 우리
새벽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리어카소리. 어떤 어르신은 그 소리와 함께하루를 시작한다. 자주빛 패딩도 자켓도 아닌 옷가지 카라위에 머플러 하나 대충 두른채, 서슬퍼런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을텐데도 어르신은 익숙한듯 장갑을 끼고 길을 나선다. 누군가에겐 그저 가난한 노인의 일상이겠지만, 내 눈엔 다르게 읽혔다. 공부해본 바, 분명 제지회사가 인건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원료를 실어 나르는 '그림자 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가난을 동력 삼아 굴러가는 포장원료 재사용 루프를 과연 건강한 시장경제라 부를 수 있을까. 포항의 새벽은 쇳가루 섞인 바람만큼이나 차다. 저 멀리 포스코의 고로가 24시간 쉬지 않고 타오르며 국가의 부를 생산하는 동안, 그 그림자 아래 골목에서는 어르신이 낡은 장갑을 고쳐 끼며 자본의 말단에서 낱장으로 흩어진 부스러기를 줍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5항은 국가가 노령으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길거리 폐지 더미 위에서 그 활자들은 고물상 저울에 달린 종잇장보다 가볍게 취급된다. 빈곤을 개인의 게으름이나 선택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마주한 진실은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 어르신이 이토록 가난한 건, 우리가 서로를 지탱하던 연대의 끈을 너무 쉽게 놓아버린 탓이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 '각자도생'이라는 차가운 생존방식이 들어찼고, 우리는 각자 고립된 채 흩어지는 분자화된 사회를 살게 됐다. 타인을 믿지 못하니 복지에 대한 지지도 약해지고, 그 틈바구니에서 가장 취약한 어르신이 먼저 무너져 내린다.
정치권에서 오가는 기초연금 논의도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여야가 액수를 두고 다투는 모습은 결국 몇만 원 더 얹느냐, 수급대상자를 조금 더 넓히느냐의 줄다리기였다. 기초연금이 어르신들에게 드릴 용돈으로 취급되는 한 이 논쟁은 영영 그 자리를 맴돌 것이다. 정부수립 이후 산업화의 기틀을 닦았으면서도 정작 본인의 노후는 챙기지 못했던 세대, 권리챙기기를 뒷전으로 두고 국가와 가족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의무와 책임만 짊어진 사람들에게 기초연금은 사회적 부채상환이다.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질 게 뻔한데 뭐하러 희생하냐"는 파편화된 사회기조를 다시 묶어줄 첫 번째 매듭, 재정문제는 그 다음에 꺼내도 늦지 않다.
대안을 이야기하기 전에 장면하나를 더 오래들여다보고 싶다. 어르신이 리어카를 끌고 나서는 그 새벽에 사실 세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한사람이 생계를 이어가고, 그 한사람의 희생으로 기업이 원료비를 아끼고, 한 사회가 자기실패를 못 본 척한다. 그 세 개가 같은 장면에 담겨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오래 따로따로 봐왔다. 예산 탓 이전에 이 장면 전체를 한 눈에 담는 시선이 드물었다.
첫번째로 떠오르는 건 이름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은 통계 어디에도 없다. 고용된 사람도 아니고 실업자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하루라도 안 나오면 서울 골목의 재활용 원료 흐름이 틀어진다. 이름없는 노동이 도시를 돌리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가 이분들을 '자원순환 기여자'로 등록하고, 최소한 산재가 났을 때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름이 생기면 권리가 따라오고, 권리가 생기면 존엄도 따라온다. 비용 걱정을 먼저 꺼내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다. 제지회사가 이분들 덕분에 아낀 원료비가 얼마인지 계산해본 적 있냐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정당한 교환, 그뿐이다.
1970년대 울산 조선소용접공은 설계도면에 없는 걸 손끝으로 알았다. 쇳덩어리가 어디서 뒤틀릴지, 어떤각도로 불을대야 이음새가 버티는지. 구미공단의 섬유 공장 반장 할머니는 실 한 올만 만져봐도 오늘 라인이 몇 시에 문제가 생길지를 짐작했다. 버스 안내양이었던 어르신은 좌석이 다 찬 것처럼 보여도 다음 정류장에서 몇 명이 내릴지를 승객 표정만 보고 알았다. 이걸 누가 가르쳐줬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다. 그냥 수십 년을 하다 보니 몸이 먼저 알게 된 것들이다.
학자들은 이걸 묵시적 지식이라 부른다. 언어로 옮기기 어렵고, 매뉴얼에 담기지 않으며, 옆에 붙어서 같이 해봐야만 겨우 전달되는 종류의 앎. 나는 그냥 몸에 박힌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느 AI 학습 데이터셋에도 없다. 기록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걸 쓸 맥락이 사라지는 거다. 1980년대 중소기업 생산라인의 위기 대응법이 2025년 스타트업과 무관해 보여도, 사람을 읽는 법과 현장을 버티는 법은 산업이 바뀌어도 본질이 같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듣는 것이다. 동네 단위로, 마을 단위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 구술사 형태도 좋고 청년과 짝을 지어 대화하는 방식도 좋다.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문명의 백업 작업이라는 인식으로.
세번째 상상으로 가기 전에, 잠깐 멈춰야 할곳이 있다. 세대갈등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쓰이고 너무 빠르게 소비되는 이 지형에 대해서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이 글 전체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이고, 그래서 가장 오래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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