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내고향 포항
포항을 이해하려면 포스코부터 말해야 한다. 포스코는 그 자체로 포항이다. 1968년에 포항제철이 들어온 뒤로 이 도시의 존재 이유 자체가 바뀌었다. 어촌이 산업도시로 탈바꿈하는 사이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로와 항만, 학교 역시 포스코의 필요에 따라 줄지어 들어섰다.
심장은 비대해지는데 손발은 괴사하는 이 기이한 성장 모델을 우리는 언제까지 '낙수'라 부르며 견뎌야 할까. 포스코가 누리는 이익의 이면에는 하청의 심화와 지역자본의 유출이라는 '빨대효과'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기업은 세계에서 이윤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노동소외는 포항이라는 로컬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성장의 열매는 민영화한 포스코, 그러니까 위에서 채 가고, 그 뿌리가 썩어가는 고통은 아래에서 감당한다.
포항의 자영업자들은 포스코가 잘되어야 포항이 산다는 믿음을 종교처럼 받아들였다. 그들이 기대하는 '낙수효과'가 이미 원하청과 배민같은 플랫폼에 걸려 우리가 있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증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포스코의 번영이 곧 나의 번영'이라는 이 오래된 신화를 어디서부터 해체해야 할까. 그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단단하다. 지난 수십년간 이 도시는 '기업의 이익'과 '시민개개인의 희망‘을 하나로 묶는 기억을 공유해 왔다. 포스코가 던져주는 콩고물이 지역경제의 유일한 활로라는 학습된 무력감이 시민들을 움직이는 셈이다. 여기에 지역언론과 정치권의 기만적 수사가 가세한다. 기업의 성장을 지역전체의 안녕으로 교묘하게 치환해온 결과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시민들의 이 확고한 믿음을 정면으로 거스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거대서사가 작동하던 시절, 개인의 고통은 '국가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함구 되거나 유예될 수 있었다. 내가 오늘 흘리는 땀이 내일의 근대화된 조국을 건설한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고단한 노동을 견디게 해줬다. 하지만 그 거대서사가 수명을 다하고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들'이다.
포스코가 포항에 풀어놓는 돈의
경로를 대강 살펴보자.
포스코본사 정규직 노동자는 비교적 괜찮은 임금을 받는다. 포항경제가 그 정규직만으로 돌아가느냐면 전혀 아니다. 포스코 아래에 1차하청, 1차아래에 2차, 2차아래에 3차가 있다. 한층 내려갈 때마다 임금은 깎여나가고, 그 빈자리는 불안한 고용과 높은 산재위험이 있다. 정규직과 3차하청 사이의 임금격차는 체감상 두세배.비슷한 공장, 같은 철, 같은 열기 속에서 일한다. 작업복만 다르다. 그렇다고 정규직이 포항에 거주하냐? 아니다. 대구, 경주 등지에서 장거리 출퇴근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경기가 좋으면 하청물량이 늘고, 나쁘면 줄어든다. 줄어들면 누가 잘리나. 포스코 정규직이 잘리나. 3차부터 잘린다. 다음에 2차. 불경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건 늘 같은 사람들이다. 한국 제조업전체가 이렇게 돌아가는데, 포항에서는 도시전체생계와 직결되니까 몸으로 느끼는 강도가 다르다.
포스코하청이 줄면 거기서 잘린 사람들이 장을 안 본다. 장을 안 보면 죽도시장, 자영업자의 매출이 떨어진다. 시장상인들도 허리가 휜다. 한 기업의 재정이 도시 하나를 좌우하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이 겹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가격이 요동치고 LNG 시장이 재편되자, 그 충격파는 고스란히 한국의 에너지수입비용 폭등으로 이어졌다.
논리는 단순하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철강생산단가가 상승한다. 늘 그래왔듯이 글로벌 가격경쟁에 내몰린 기업은 그 비용을 하청단가 후려치기로 메운다. 결국 비용절감의 압박이 도달하는 종착지는 하청노동자의 월급봉투다. 지구반대편의 전쟁참극이 이 도시의 재정형편을 뒤엎는데 창업주의 성공서사가 재탄생 할리 만무하다.
포항시내를 걸어보면 안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죽도시장주변, 육거리상권, 시외버스터미널근처. 한때 사람이 몰리던 자리에 '임대문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1년 전까지 냉면집이었다, 세탁소였다, 핸드폰 매장이었다. 지금은 비어 있다. 매장은 언젠가 누군가의 퇴직금과 창업대출금으로 희망찬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자영업 비중을 살펴보자. 한국의 자영업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전체 취업자의 20%가 넘는다. 미국이나 독일의 두배에 가깝다. 이제 더이상 자영업이 많다는 건 창업정신이 넘친다는 뜻이 아니다.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취직에서의 이탈과 하청에서의 해고, 좁기만 한 정규직의 문이 그들을 그길로 이끌었다. 그 길은 결국 가게를 여는 일이다. 퇴직금털고, 대출받고, 치킨집이던 뭐든 차린다. 포스코하청에서 10년 일하다 잘린 사람이 퇴직금으로 식당을 열고, 2~3년 버티다 문을 닫는다. 자영업은 이 나라가 마련한 마지막 비상구처럼 보인다. 열고 들어서면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 않나.
세간의 냉소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자영업자가 너무 많으니 숫자를 강제로라도 줄여야 한다는 논리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자영업자들이 자신을 재벌과 같은 '사업자'로 착각해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앞장서서 저항하니, 차라리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감소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게 답이라는 잔인한 소리까지 나온다.
자영업자의 몰락을 그저 시장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이라고만 치부하면 곤란하다. 시장에서 초강자가 국민의 생존권과 경제적 자립을 위협할 때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정신은 어디로 갔나. 국가가 고용을 책임지지 못해 등 떠밀려 나온 사람들에게, 이제는 '숫자가 많으니 알아서 죽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개인자영업자의 몰락을 "장사를 잘 못해서"라고 말하면 편하다. 그런데 포항의 자영업자가 줄줄이 폐업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개인의 역량 바깥에 있는 것들이 쌓여있지 않나. 앞에서 살펴본 이유를 들어 이번에 자영업자의 입장으로 이입해보자.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고객이 줄었다. 포항인구가 줄고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51만 명이던 인구가 지금 50만밑으로 내려왔다. 특히 빠져나가는 게 돈을 쓰는 20~30대다. 자영업자입장에서 가게 문을 열어도 들어올 손님 자체가 줄어든다. 쿠팡이 안 되는 시대도 아니다. 개인정보유출로 사용자가 대폭 줄었지만, 여전히 관련업종 1~2위다. 대형마트, 온라인 배달, 편의점 프랜차이즈가 동네상권을 꽉잡고 있다. "손님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손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수요가 줄면 공급이 조정된다고 써 있다. 교과서가 빼먹은 게 있다. 그 '조정'에 누군가의 삶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억울해 미친다. 에너지비용이 올랐다. 에너지가격급등의 여파가 자영업자에게도 직격탄이다. 식당가스비, 세탁소전기세, 카페 냉난방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가격이 뛰면서 식재료비도 올랐다. 밀가루, 식용유, 설탕등 식자재 공급망이 흔들리면 포항분식집 떡볶이 원가가 오른다. 줄어든 매출과 치솟은 비용사이에서 마진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친다.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매출이 동반성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인건비를 올리니 결국 감당하지 못해 직원을 줄이고, 주인 혼자가게를 지킨다. 아침 7시에 문 열어서 밤 11시에 닫는다. 그래도 남는 게 없다. 노동시간만 놓고 보면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이 가장 적게 남긴다. 좋다. 개인사업이니 리스크를 감안한 것이라 치자.
한국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부채는 통계에 잡히는 것만 해도 억 단위다. 말이 억단위지 이거 심각한 수준이다. 당장 국밥한그릇 가격에도 손이 벌벌 떨리는데 억단위가 왠말인가. 가게를 열 때 대출을 받는다. 장사가 안 되면 운영자금으로 또 대출을 받는다. 카드결제대금이 밀리면 또 대출을 끌어다 쓴다. 빚이 빚을 낳는 판에 올라선다.
코로나19 때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을 대폭풀었다. 긴급처방이었다. 그런데 그 대출의 상환시점이 돌아오고 있다. 장사가 회복됐으면 모를까, 포항같은 지방소도시에서 코로나 이전매출을 되찾은 자영업자가 얼마나되나. 대출은 여전하고 매출은 줄었다. 이 상태에서 폐업하면 빚만 남는다. 폐업도 못 하고 연명하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상태. '좀비 자영업'이라는 잔인한 이름이 붙었는데, 잔인한 건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이 투영하는 현실 쪽이다.
마지막이다. 플랫폼이 위에서 걷어간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같은 배달플랫폼 수수료가 매출의 15~20%에 달한다. 자영업자입장에서 배달을 안 하면 매출이 줄고, 하면 수수료에 깎인다. 카드수수료까지 합하면 매출의 4분의 1 가까이가 중간에서 빠져나간다. 포항같은 도시에서는 오프라인매출까지 줄어드는 상태에서 플랫폼 의존도가 더 높아지니까 타격이 배로 온다. 플랫폼기업의 수익은 해마다 불어나고, 자영업자의 마진은 해마다 깎인다. 주인이 바뀌었을 뿐 소작농과 닮았다. 땅 대신 배달앱이, 소작료 대신 수수료가 있는 셈이지 않나.
과거에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던 것은 '제철소'라는 물리적 실체와 지도자가 약속한 '성장'이었다. 거대서사가 증발한 자리를 채운것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에는 서사가 없다. 데이터와 효율이 사람을 움직인다. 이토록 열심히 사는데 왜 가난해지는지 설명해주던 정치인, 그 정치인이 말해주던 '국가주의적 서사'가 사라졌다.
이 상태에서 "경영능력을 키워라", "메뉴를 차별화해라", "SNS 마케팅을 해라"라는 조언이 얼마나 지엽적인 소린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나. 판 자체가 기울어져 있는데 그 위에서 균형 좀 잘잡아 보란 소리다.
거기다,자영업폐업의 연쇄작용이 도시전체를 흔들었다.
가게하나가 문을 닫는 건 그 가게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식재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뜸해지면 가게 주인이 단골이던 세탁소와 미용실의 하루가 조금씩 허전해진다. 공실이 늘어난 거리는 스산하다. 상권이라는 것은 하나의 생태계여서, 한 종이 사라지면 먹이사슬 전체가 흔들린다. 옆집장사가 망해서 문 닫는데 잘 됐다고 말하는 상인이 없다. 공멸의 감각이다. 타인의 몰락이 곧 나의 몰락이라는 이치를, 이 사람들은 경제학 교과서 없이도 뼛속까지 알고 있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귀기울여 들어보면 뜻밖이다. 중국얘기, 미국금리 얘기, 환율얘기가 오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지 않을까싶다.
안타까운 건, 이 감각을 대변하는 말이 어디에도 없다는 거다.
진보정치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을 떠올려보자. 건넸던 말이 있기는 한지 되묻고 싶다. "혐오에 맞서자."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은 그 자체로 틀린 말이냐면 아니다. 그런데 평생 막일해서 갚지도 못할 돈 쏟아부은 가게 문을 닫고 나온 사람 앞에서 꺼낼 말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지역청년세대를 언급하자면 포항에서 20~30대 인구는 해마다 줄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서다. 포스코 정규직은 바늘구멍이고, 나머지는 하청이다. 자영업은 앞에서 충분히 봤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서울로, 부산으로 떠난다. 떠나는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 누구든 더 나은 곳을 향해 발을 옮기는 건 본능이니깐 말이다.
남는 건,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부모의 노환을 곁에서 지켜야 하는 사람, 대출로 집을 사서 발이 묶인 사람, 애초에 떠날 종잣돈이 없는 사람. 이들에게 포항은 버텨야되는 조건 쯤된다. 택한 게 아니라 놓인 거다. 고향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따뜻함은, 머무는 것이 자발적인 경우에만 성립한다. 떠날 자유 없이 붙들려 있는 곳을 고향이라 부르기엔, 그 단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렇지 않나, 청년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어르신들이 자리를 채웠다. 자영업자의 고객이 줄어드는 것도 결국 이 인구유출영향 안에 있다. 포항의 고령화율은 전국평균을 이미 넘었다. 앞선 회차에서 언급한 리어카 어르신들이 바로 그 숫자 안에 포함된 사람들이다. 산업화시대에 이 도시의 기둥이었던 사람들. 늙어서 기초연금만으로는 하루를 버틸 수 없어 폐지를 줍는 사람들이다. 혹은 자식새끼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 일을 하고 있거나.
예전엔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약속이 있었다. 한국근대사가 우리개인에게 건넨 가장 매력적인 서사다. 포항의 새벽거리는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매일 아침 증언하고 있다. 평생을 철강도시의 산업역군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낸 사람이 노년에 리어카를 끈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건 그 성실함을 배신한 현 시스템이어야하지 않을까. 똑같이 성실하게 일하는데 누구는 가난해지는 사회는 어딘가 깊은 곳이 고장 나 있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잘사는 동네 도로는 삐까뻔쩍한데 우리동네 도로는 왜 항상 어딘가 패여있냐."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활동하다가 한번쯤들은 말이다
포항시 재정자립도는 30% 안팎이다. 나머지 70%를 중앙정부 이전재원에 기대야 한다. 쉽게말해, 포항이 자기 힘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이 도시를 굴릴 수 없다는 뜻이다. 세금은 기업이 몰린 수도권에서 걷히고, 교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흘러내려온다. 그 양이 충분하냐면, 충분하지 않다. 수도권에 인구와 자본이 쏠릴수록 세수도 함께 쏠리고, 지방은 점점 더 깊이 중앙에 기대게 된다. 이 기울어진 판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균형발전'을 말해왔다. 균형은커녕, 경사는 해마다 가팔라지고 있다.
주민들이 올려주신 예산을 논의하면, 요청의 내용에서 도시의 사정이 읽힌다. 마을 도로를 좀 고쳐달라, 가로등이 끊어졌다, 경로당 난방비가 부족하다, 아이들 놀이터가 방치되어 있다는 얘기가 전부다. 어디에도 화려한 개발사업은 없다. 그건 본예산 책정에 다 잡혀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포항의 풍경이 보일거다. 어느 도시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얼핏 보면 각각 다른 문제 같지만, 들여다보면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글로벌자본의 흐름이 국가산업을 경유해서 이 작은 항구도시민의 식탁사정까지 미처있다. 그 줄기를 보지 않으면, 가지 하나하나를 아무리 흔들어봐야 나무 전체가 왜 마르는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경기가 나쁘냐는 질문에는 결국 거시정책을 거쳐 원하청관계를 또 언급해야된다. 세계 철강시장의 역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이 그 부담을 껴안지 않기위해 얼버무린다. 복잡한 사안이고, 설명하기 곤란하니까. 그래서 국힘으로 대표되는 지역여당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진보진영에게 책임을 돌리고 대립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한다. 그게 잘 먹히니까.
그렇다고해서 민주진보진영이 잘했나. 아니다. 지금 한국의 진보정치가 포항을 비롯한 경지역에서 하고 있는 일이 뭔가.
솔직히, 별로 없다. 선거 때 내려와서 악수하고 돌아간다. 공약집에 "지역균형발전" 지역 명소 방문록에 포항의 번영에 함께합니다" 한 줄 적어놓고 돌아간다. 그 한 줄이 이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포항주민이 진보를 자기 편으로 여기지 않는 건 당연하다. 나 자신의 절망감을 설명해주지 못하는 사람을 그 사람이 있는 정당을 왜 내 편이라고 느끼겠나. 더구나 거대서사가 파쇼적이라고 깎아 내리던 사람들이다.
포항은 아직 살아있다. 죽도시장상인들은 내일도 새벽에 좌판을 깔 거고, 하청노동자들은 내일도 안전모 쓰고 현장에 들어갈 터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 앞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궁리를 하고 있을거다.
진보정치가 한낱 수도권대학생 중심의 운동권이 자주 언급하는 말, 그러니까 "차별과 혐오를 철폐하자"는 말만 비수같이 쏟아붇는 이상 지역민 그 누구도 진보정치를, 청년진보에게 관심가져주지 않을 거다. 이 사람들의 하루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일. 그리고 그걸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진보정치인의 입에서 나와야한다.
과거의 서사 처럼 전체를 위해 하나를 희생해야된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서사에서 벗어나야함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개인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 한낱 이십대청년이 거대서사를 말하는 것도 웃기긴하다. 그럼에도 말해보기를, 지역민이 국가주의서사에 감동하는 만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거시정책, 그로인한 성과가 절실하다. 거대서사가 사라져 어수선함이 남은 도시에, 다시금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불어넣는 정치적 상상력이 절실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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