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에 청약통장을 개설하고 납입회차를 세어본 적 있다. 84점. 당첨 가능한 점수가 아니었다. 가점을 올리려면 부양가족이 있어야 하는데 부양가족을 만들려면 먼저 집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통장을 덮으면서 정상범주로 들어야만하는 사회분위기가 내몸에 맞지 않아도 너무 안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알아서 그 생각을 거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래도 노력하면 되지 않나'라는 말이 내 안에서 먼저 나왔다.
그 자기검열을 자각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아버지는 죽도시장에서 일하셨다. 어머니는 큰이모부 사업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셨다. 집은 없었다. 전세도 아니고 월세였다. 아버지가 컴퓨터조립판매를 하던 매장에 달린 조그마한 방한칸에서 생활했다. 그 조건에서 두 분은 살림을 꾸렸다. 잘살기 위해선 요즘 그러면 안된다. 이걸 노력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딱히 할 말이 없다. 화는 나는데 그 화를 어디둬야할지 모른다는 게 더 솔직한 심정이다.
1997년 이후 기업들이 고용형태를 바꾼 건 다들안다. 위기 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는데 위기가 끝나도 노동시장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힘있는 기업입장에서 돌아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스펙을 쌓으러 어학연수를 가면 빚이 생긴다. 그 빚을 갚다 보면 이력서에 경력 대신 공백이 쌓인다. 이 사이클을 의지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사이클 밖에 서있는 사람뿐이다.
구조가 이렇게 뻔한데 왜 청년들은 구조를 탓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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