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현재형으로 사는 나라의 정치
파리의 낭만은 늘 보기 좋다. 그러나 그 뒤편에 최루탄 냄새와 깨진유리창이 함께 따라붙을 때, 그것을 민주주의의 생동감으로만 찬양할 수는 없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묻는 시선이라면, 그런 장면은 결코 건강한 징후가 아니다. 프랑스좌파는 두 세기 전 혁명의 영광을 아직도 현재형으로 되풀이하려는 서사에 오래도록 갇혀 있었고, 그 결과 사회정의를 정교하게 세우기보다 사회혼란을 일상화하는 쪽으로 기울어 왔다. 그 경향의 뿌리는 1930년대 인민전선(Front Populaire)에 남아 있는 모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프랑스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더 또렷해진다. 1789년의 혁명은 왕정의 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정치적 정당성을 제도보다 거리의 열기와 주권자의 분노에서 끌어오는 감각을 남겼다. 자코뱅과 공포정치는 그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례다. 이후 프랑스 정치문화에는 “혁명은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모순된 시간감각이 유산처럼 남았다. 프랑스좌파가 혁명을 현재형으로 반복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스티유는 해방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 기억은 곧 절차보다 직접적인 시위를 앞세우는 습관으로 굳어졌다. 1930년대 인민전선은 이 오래된 혁명유산이 의회정치 안으로 이동한 장면이었다.
프랑스혁명의 '무한연장서사’가 하루아침에 굳어진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회주의의 출발점부터가 공화주의적 법치와 혁명이라는 열망 사이의 줄타기였다. 1905년, 각기 흩어져 있던 사회주의분파들이 장 조레스의 주도로 SFIO, 즉 노동자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라는 이름 아래 모였을 때만 해도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공화국은 사회주의가 뿌리내릴 토양이었던 셈.
프랑스사회주의의 출발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당은 처음부터 하나의 단일한 사상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19세기 말 프랑스노동운동은 게드주의적 혁명사회주의, 조레스의 공화주의적 개혁사회주의, 그리고 의회 진입을 중시한 실용주의 노선이 뒤엉켜 있었다. SFIO는 이 이질적인 흐름을 한 깃발 아래 묶어냈다는 점에서 분명한 역사적 성취를 가졌지만, 동시에 그 내부에 이미 ‘혁명’과 ‘개혁’ 사이의 긴장을 품고 태어난 셈이었다. 다시 말해 프랑스사회당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라기보다,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열을 봉합해야 했던 역사에 가깝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