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그늘 아래

계약서에는 없는 이름

by 백재민 작가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회의실 뿐만이 아니라 어느 회의실이든 언제나 조금 덥다.


탁자 위에는 회의안건이 적힌 A4용지가 있고, 마이크에서는 간헐적으로 잡음이 섞인다. 3년차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 이 자리가 익숙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서류위의 숫자들이 익숙하지 않다. 그 A4용지에 적힌 회의안건을 살펴보며, "다른건 다 알겠는데 예산으로 명시되어있는 숫자가 항상 낯설다. 주민이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있는 도로보수 예산이나 편의시설 보수예산이 올라올 때는 회의실 공기가 순조롭다. 그런데 복지환경분과로 들어온 제안사업은 어르신돌봄망 확충예산, 폐지수거 어르신 지원확대를 다루면 공기가 약간 느슨해진다. 애초에 그런 사업이 올라오질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나 복지환경분과위원회의 할일이 거의없다. 복지환경분과위원회에 올라오는 제안사업이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학도병전승기념관의 태극기 보충설치이니 말 다한 셈. 늘상 있는 지역정서이니 크게 뭐라할 의욕도 그럴 필요성도 잃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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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의 2024년 예산은 약 2조원 규모였다. 그 중 사회복지분야 비중은 표면적으로 30% 안팎에 달한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함정이 있다. 사회복지예산의 상당부분은 국고보조금 사업, 즉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지침을 그대로 내려받아 집행하는 방식이다. 포항시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배분하는 자체사업비, 이른바 '포항시장의 정치적 의지'가 담긴 그 예산에서는 토건과 인프라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포스코와 영일만항을 중심으로 한 산업인프라확충, 도시외곽개발, 도로포장같은 항목들이 예산심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먼저 선점된다.

포항시청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

포항은 자체 재정자립도가 낮지 않은 도시다. 세계적 제철기업포스코가 버티고 있고, 수백개의 협력업체가 그 주변에 뿌리를 내렸다. 영일만항은 그 위에 얹힌 물류인프라다. 그래서인지 예산의 우선순위가 반복적으로 기업친화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그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는지를 이해하려면, 포항의 정치지형을 들여다봐야 한다.


포항시 북구와 남구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안다. 포항은 사실상 보수정당이 불패하는 지역이다. 진보정당에 있던 사람으로서 자리욕심에 그 자체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 폐해를 짚고 그 폐해가 지역주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이다.


경쟁이 없어지면 정당이 유권자에게 설명해야되는 의무가 줄어든다. 어르신 돌봄예산이 왜 이 규모인지, 노인일자리사업이 왜 저 방식으로 설계됐는지, 주민센터복지 인프라보다 특정도로보수가 왜 먼저인지를 유권자 앞에서 본격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이어진다. 포스코관련업체 사람들이 상공회의소를 채운다. 그들이 다시 시청자문위원회로 이어지고, 예산우선순위는 그 연결망 끝에서 결정된다. 청탁하고 비리가 있을것이라는 문제의식이라기보다 지역이 돌아가는 방식이 그렇다.

포항상공회의소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

도시학 연구자들은 이를 '기업도시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단일대기업이 도시경제를 사실상 주도할 때, 지역정치는 그 기업의 이해관계와 끈끈하게 결부된다. 포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정희 아래서 박태준 회장의 포스코가 포항시민을 먹여살리고 포항경제를 이바지하던 그때의 포스코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포스코는 2000년에 완전민영화됐다. 그 전까지 포스코는 제철소인근에 직접학교와 병원을짓고 운영했으며, 정규직직접고용 비율이 높아 지역사회의 생계가 포스코임금과 직결됐다. 민영화 이후 포스코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생산공정의 상당부분은 수백개의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구조로 전환됐다. 포스코정문 안과 밖의 임금격차는 같은공장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고 있으며, 지역사회기여 역시 사내복지의 형태로는 정규직 안에서만 순환된다. 포스코가 포항의 심장이라는 인식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심장이 너무 강하면 말단혈관까지 피가 안 돌듯이, 그 논리가 진리처럼 굳어버린 자리에서 포스코 중심의 인맥 바깥의 삶은 황폐하다. 폐지수거 어르신의 새벽이 그렇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들어오기 전, 나는 이 제도에 꽤 높은기대를 걸었다. 주민이 직접 필요한 사업을 제안하고 또한 주민대표가 이를 심의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 중 하나가 아닌가. 실제로 전국일부 지자체에서는 이 제도를 통해 기존행정이 포착하지 못했던 생활밀착형 수요가 예산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포항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역시 기존행정이 포착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발굴해 보완해왔다.


아쉽게도 현실적인 이유로 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배분되는 심의예산규모 자체가 전체예산에서 지극히 작은 비중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역시 이번년도들어 상한을 두지 않아, 자율적인 사업선정과 예산선정이 가능해졌다. 1차적인 사업심의를 주민대표인 위원이 직접 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지만, 전문성과 시행정의 현실적인 한계로 이 역시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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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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