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 감성을 그리는 공간 화실에 간다.
그림은 선이나 색채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사물, 풍경 또는 상상력을 구체적인 모양으로 표현한다.
그림 감상은 좋은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는 일단 화실에 가면 된다.
화실에 앉아 연필을 들고 붓을 들면 그림 그리기가 시작된다.
시작의 중간과 끝에 처음 느껴보는 재미, 나를 위한 힐링, 집중과 몰아의 시간,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남편이 '이순구 화백의 웃는 얼굴' 그림을 좋아했다.
화난 얼굴 마누라 대신할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이 그리웠나 보다.
원작 그림 구입은 가격이 고가이고, 저렴한 프린트 그림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주저 없이 일을 저지르는 나는 '그럼 내가 한번 예술작품 만들어 볼까?'라는 마음이 불끈 들었다.
바로 아파트 상가에 있는 화실에 등록했고 매주 2회 그림을 그렸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은 나에게 힘듦이고 고통이었다.
나는 창의력도 손재주도 없다.
특히 손으로 하는 건 많이 못 한다.
요리실력도 꽝이다.
학창시설 미술시간 그림 그리기는 배우지도 않은 두 발자전거를 무조건 바로 타야 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미술시간에 거창한 주제와 도화지와 물감이 주어진다.
그림의 구도, 물감 농도, 채색,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그냥 짧은 시간 완성된 그림을 제출해야 한다.
기억 속의 그림 그리기는 늘 짜증이고 힘듦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림 그리기가 신세계로 다가왔다.
신세계 백화점 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로 다가왔다.
화실에서 50대 세명으로 그림팀이 구성되었다.
오전에 우리만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림보다 세명의 끝없는 수다가 더 재미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나도 그림을 그릴 줄 아는구나,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스스로 예술가에 빙의되어 예술세계에 심취된 채 고흐에 대해 논하며 예술적인 수다를 나누었다.
친절하신 선생님께 그림에 대해 열심히 질문하고 열심히 배웠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은 수채화로 그리는 그림보다 편한 마음을 준다.
실수로 얼룩지고 실력으로 엉망 된 그림은 언제든지 여러 번 덧칠로 수정이 가능하다.
마음속 말이 글로도 나오지만 그림으로도 나온다.
첫 번째 화실은 아쉽게도 폐업이 되었다.
두 번째 화실로 옮겼다.
그림을 어릴 적부터 그린,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선생님이 계셨다.
이때부터는 그림 그리기에 집중되는 내가 있다.
그림 그리다가 문득 시계를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색칠이, 그림 그리기가, 이토록 나에게 집중되는 시간과 물아위체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뭔가 50년을 살아오며 응어리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도 든다.
가슴속 울컥하는 행복함이 마음을 온화하게 감쌀 때도 있다.
물론 나의 엉망진창 미천한 그림실력이 그림으로 표현될 때 느끼는 좌절감과 실망감은 나를 예술가처럼 쓰라린 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마음은 여러 색상이 다시 배합되어 집이 되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면 또다시 마음속 예술가로 화가로 빙의된다.
나는 오늘도 내 감성을 도화지에 그리는 공간, 화실에 간다.
어릴 때 50대를 보면 예쁜 감성을 잃고 사는, 나이만 50인 사람인 줄 알았었다.
이제는 50이라는 나이가 사춘기를 지나 갱년기를 거치며 나 자신이 완성되고 있음을 안다.
내 마음속 풍요로움, 허전함을 바라보며 스스로 칭찬도 해 주고 위로도 건네며 잔잔한 나를 만들어 간다.
커피를 들고 화실에 들어선 나는 감성이 글썽글썽해지며 또다시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