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과학을 가르친다는 것

by 김탐탐

가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대학교 4학년, 모두가 잠들었을 깊은 새벽, 나 홀로 창문을 향해 있는 책상에 앉아 작은 노트북 화면 속 퀘이사 검색 결과를 바라보며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과학자들의 관측 결과와 각종 이론을 참고하여 그린 상상화가 대부분이었고 실제 퀘이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픽셀이 여기저기 깨진 저화질의 사진뿐이었다. 퀘이사는 지구에서 아주아주 멀리 존재하는 천체이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6억 년에서 280억 년을 가야 하는 상상하기도 힘든 먼 거리에 있다.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서 지구에서 관측하면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그 점을 확대해 놓은, 그래서 화질이 낮아 픽셀이 깨져버린 퀘이사의 사진. 그 사진을 보고 잠시 멍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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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담당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그분은 학문을 학문으로, 교육을 교육으로 바라보기보다 항상 우리에게 질문하시고 우리의 대답이 자연의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지구과학은 암기할 과학 개념이 많았지만, 항상 이해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한 것과 같은 방향으로 자연도 움직인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자연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은 늘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고 그 끝은 또 다른 것의 시작이다.’ 그분의 영향으로 나는 지구과학이라는 학문에 한 걸음씩 다가가 지구과학교육과를 나의 진학 1순위 학과로 정하게 되었다. 지구과학교육과에 가기 위해 국어, 수학, 영어 공부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생각했다. ‘조금만 참으면 내가 좋아하는 지구과학만 공부하고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올 테니 그때까지 더 힘을 내보자.’ 나의 간절한 바람과 노력이 어딘가에 전달되었는지 큰 무리 없이 인근 대학의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지구과학은 크게 지질학, 지구물리학, 대기과학, 해양학, 천문학으로 나누어지며 해당 학문은 대학에서 별개의 학과로 존재하기도 한다. 지구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을 종합하여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지구과학교육과의 교육 목표였다. 고등학교 때 표면적으로 학습했던 내용에 비해 대학교 교육 내용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심화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학습 내용과 학문의 심화 간격이 생각보다 넓어서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시간이 가며 그 부분은 차츰 적응되고 지구와 우주에 대해 좀 더 깊숙하게 알아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설렜다. 평소 멍 때리는 시간이 많고 공상가적 기질이 있던 나에게 지구과학이라는 학문은 항상 사유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지구과학 내에서 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을 역사학적으로 살펴보고 위기의 순간에 과학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는 나에게 큰 감동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과학 혁명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과학 패러다임은 천동설과 지동설이지만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던 과학 패러다임은 판구조론이었다. 판구조론은 2015 개정 교육과정 기준 중학교 1학년 과학 시간부터 학습하는 과학 개념이다.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 교육과정에서도 중요하게 소개되어 있고, 고등학교 2, 3학년 지구과학1, 지구과학2 교육과정에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여러 번 수업하며 수업 피드백을 받아보면 생각보다 판구조론을 공부할 때 흥미 있었다는 학생들이 꽤 있다. 판구조론 그 자체의 학습 의미만 살펴보면 발산형, 수렴형, 보존형 경계와 각 경계에서 지각변동, 그리고 각 경계의 세부 예시를 모두 암기해야 하는 피곤한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고 하는 학생들은 표면적인 지식이 아닌 판구조론의 의미와 역사를 이해한 학생들이었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시작으로 약 40년 동안의 과학 패러다임의 수정 및 보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판구조론의 역사적 의미와 이 모든 과정이 1900년대에 시작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패러다임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고 과학을 학문 자체로 느끼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과 연관 지은 것이다. 그 학생들 중 몇몇은 2016년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발생했던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하고 1년에 몇 센티미터씩 움직이는 지구 표면의 느린 움직임이 이렇게 강력하게 느껴지지 몰랐다며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해마다 어떤 학년을 담당하는 것과 관계없이 판구조론은 매 학년 교육과정에 담겨있어 항상 학생들에게 판구조론 수업을 하곤 한다. 지구과학1 교과서의 교육과정이 개정되며 판구조론에 대한 신빙성 있는 최신 이론 결과와 깊이 있는 과학 개념이 추가되었다. 판을 움직이는 자체적인 물리적인 힘, 지자기 연구를 통한 대륙 이동의 증거, 그리고 판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순환을 가진다는 것이다. 지구 표면은 여러 개의 판이 발산형 경계에서 맨틀 대류의 상승으로 생성되고, 생성된 판은 해구로 이동하여 결국 소멸한다는 것. 그리고 그 소멸이 끝이 아니라 다시 맨틀 내부에서 순환 과정을 거쳐 또 다른 상승으로 새로운 판이 생성된다는 것. 이 부분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면 나도 모르게 진지해진다.


“얘들아,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크고 웅장한 지구의 대륙과 해양마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그들마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구나.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은 언제부터 존재했고 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이 땅은 2억4천만 년 전에 판게아라는 이름으로, 12억 년 전에는 로디니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이전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초대륙 중의 하나겠지.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것, 사후세계라는 것,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선생님은 생명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좁은 의미의 생명도 있지만, 이것을 확장하여 더 넓은 의미로 지구 그 자체에도 생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선생님은 아무래도 과학을 전공했다 보니 유물론이라는 이론에 좀 더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 우주는 사실 모두 물질로 이루어져 있잖니. 하지만 물질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유물론과 반대되는 관념론, 즉 이 세상에 정신, 마음, 관념만이 존재한다는 이론도 배제하지는 않아. 과학적이고 객관적 기준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구과학 속에는 물질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 특히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순환한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 싶어. 지구 내부의 각 하위 영역, 즉 지권, 기권, 수권, 생물권 내부에서도 각 물질이 순환하고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지. 그리고 활발하지는 않지만, 지구도 우주와 물질 교환이 일어나기도 하고, 우주 그 자체에서도 물질이 순환하지. 나중에 배울 테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별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단다. 하지만 그 끝은 또 다른 별의 시작이기도 하지. 그렇게 여러 번 순환하며 우주의 원소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 순환하며 원소들의 구성비가 달라지기도 하고 달라진 구성비로 새로운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거든. 그 새로운 무언가가 태양이었고, 지구였고, 생명체였고, 우리 인간이었단다.

선생님이 대학교에서 전공과목을 배울 때 내가 공부하는 것이 과학인지 철학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었어. 물론 학교에서 객관적인 증거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았지만, 그 지식과 개념들이 선생님에게 인식될 때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졌거든. 과학이 과학처럼 보이지 않고, 과학 속에 철학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난 그것을 나만의 의미라고 해석했고. 그런 의미를 많이 찾을수록 과학이 즐거웠어. 대다수 사람에게 과학은 표면적 의미만 받아들여 따분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교과일 거야. 하지만 그 표면적 사실에만 온 힘을 쏟기보다 내면의 의미를 찾아보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럼 과학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질 거야. 과학도 얼마든지 문학과 철학과 사학과 친해질 수 있어. 너희들도 과학을 그렇게 바라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단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한단다. 우리 몸도, 마음도, 지구도, 우주도 항상 변하고 있어.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해”


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길고 장황하게 얘기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관심이 없어질 것 같아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지구의 표면인 판이 어딘가에서 태어나서 어딘가에서 죽고,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닌 또 다른 판의 시작이 되고. 지구가 꼭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니?”

그럼 학생 중 몇몇 표정이 바뀐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치 우주의 끝을 보고 싶어서 쉬지 않고 달려가는 빛처럼 잠시 표정이 멍해진다. 수업 종료령이 울리고 나머지 학생들이 교과서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 학생들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온다. ‘선생님! 아까 해주신 이야기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 나는 괜시리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음, 어떤 부분이 더 알고 싶니?’라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아이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런 대화는 자세할 수록 흥미와 호기심이 반감된다. 너무 넓지도 갑갑하지도 않을 정도의 범위로 이야기한다. ‘이렇게 화산활동과 지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행성은 태양계에서 우리 지구 뿐이란다. 다른 행성들은 이미 식어버려서 더이상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아. 지구는 참 특별하다, 그치?’ 그럼 아이들은 마음 속에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만들며 나를 향해 웃음 짓는다. 그런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슴이 꽉 찬 하루가 된다.

지구과학의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가르치며,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사실을 기반으로 알려주되 그 속에 숨은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도록 안내하자. 내가 찾은 의미가 학생들에게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학생들도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지구과학을 전공하지 않고 지구과학과 별개의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더 큰 어른이 되었을 때 ‘지구과학’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지구과학으로 한걸음, 한걸음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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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학교 4학년, 모두가 잠들었을 깊은 새벽부터 시작된 나의 멍 때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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