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쓸 때 볼펜 한 자루
서기 1982년 5월 27일 (목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방청소
일어난 시각 : 오전 6시
엄마께서는 편지를 쓰고 계셨다. 나도 이모한테 편지를 썼다. 그런데 볼펜이 안 나왔다. 그래서 엄마가 다 쓴 다음 할래니까 숙제 때문에 못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편지가 쓰고 싶어도 숙제 다해놓고 하는 거라고.
잠자는 시각 : 오후 8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편지 써본 적 있으신가요.
제가 서른 살 초반까지만 해도 편지를 썼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문방구에서 예쁜 메모지를 샀던 것 같고
중학생 때는 꽃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사러 문방구에 가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랐던 기억이 있어요. ㅎ ㅎ
향수냄새가 나는 편지지도 있었어요.
바른손, 모닝글로리 등 종이질과 품질이 좋은 제품도 있었고요.
잘 모르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제품도 있었지만 대부분 made in korea 한국제품이었죠.
그 당시 한국제품은 썩 좋진 않았어요.
그래서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슬로건까지 있었죠.
지금은 대부분 중국산이라 한국산을 보면 왜 이리 반갑고 좋던지요.
예쁜 편지지에 손글씨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
편지 쓰는 방법도 배웠지요.
받는 사람
첫인사
내용
편지 쓴 날짜
보내는 사람
편지지 접는 방법도 정말 다양했어요.
저는 모서리 부분을 부채접기해서 잎사귀모양을 만든 후 접는 걸 좋아했어요.
우표를 사서 붙였고요. 겨울에는 씰을 사서 우표옆에 같이 붙이기도 하였어요.
방학이 되면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주소로 편지를 부치기도 했었죠.
다이어리에는 친척들, 친구들 집주소가 빼곡히 적혀있었어요.
편지를 부치고 답장을 기다리죠.
오늘 왔을까 싶어 우체통을 열어보고
아직 안 왔네 하며 기다리고
그렇게 기다리다가
우체통에 편지가 꽂혀있으면 얼마나 신났던지요.
지금은
이러한 기다림이 없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답답하고 느린 것 같은데요.
그 시간 동안 더 능률적이고 생산적인걸 하고 말지 싶은데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시간을 맞추어 걸음의 속도를 조절하죠.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 맞춰 뛰기도 하고요.
근데 그렇게 하면 집에 빨리 도착하는 거 같아도 십분 정도 차이가 날 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날은 그냥
내 속도로 걷다가 기다리게 되면 기다리고
타게 되면 타고
일분만 빨리 걸었음 탈 텐데 탈 수 있던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도
그냥 뛰지 않고 기다리기도 해요.
빠르게 하는 게 이제 조금은 버거워요.
젊었을 땐 열차 한 대 놓치는 게 그리 싫고
횡단보도 깜박여도 막 뛰어가고 그랬는데요.
이젠
잘 안 뛰게 되네요. ㅎ
늙어가는 거겠고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어진 거겠죠.
오늘
이모에게 편지 쓰던 엄마의 모습
볼펜이 없어 기다리다가
숙제 때문에 못쓰고 있던 열 살 어린이의 일기를 보며
편지를 썼던 추억을 끄적여 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