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샤베트

by 푸른 잎사귀

서기 1982년 6월 12일 토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없음

일어난 시각 : 오전 7시


주인집에서 사베트를 주셨다. 참 맛이 있었다. 그런데 밑에 가루가 있었다. 가루도 참 맛이 있었다. 우리도 냉장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샤베트.

오랜만에 불러보는 단어.


지금은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나 할인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손쉽게 사 먹을 수 있었지만

그 시절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번을 먹기 위해 여러 번을 기다려야 했었다.


스텐으로 된 원기둥 용기에

오렌지맛이 나는 주스가루를 설탕과 물을 넣어 입맛에 맞게 희석한 후

좁은 입구에 흘리지 않도록 적정선을 맞추어 액체를 붓고 막대를 꽂아 냉동실에 넣어 얼리면


꽁꽁 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중간중간 빼보다가 옆면은 살얼음이 가운데에는 액체가 그대로 있어서

막대가 쑤욱 빠지곤 하는 샤베트통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막대를 꽂아 얼리곤 했었다.


냉장고가 없던 우리 집에서는

주스가루를 물에 타서 오렌지주스를 만들어 먹곤 했었다.


오렌지주스도 맘껏 먹기 힘든 시절

이 마법의 가루 한 봉지로 주스와 샤베트를 만들 수 있어서 엄마가 사 오시거나 누가 선물용으로 주면 참 행복했었다.


쪽쪽 빨아먹고 핥아먹고

아껴먹다가 마지막에 녹지 않은

주스가루도 맛있었던 열 살의 여름이 새콤한 오렌지가루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