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같이 쓸래?
서기 1982년 8월 26일 목요일 날씨 비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없음
일어난 시각 : 오전 5시
학교 공부를 끝마치고 집에 올 적에 비가 왔다. 비를 홀딱 맞았다. 그런데 어느 집 지붕 있는데서 쉬었다. 그때였다. 웬 할아버지가 고맙게도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하셨다. 나와 친구는 비를 안 맞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할아버지가 있는지 몰랐다.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한강작가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비가 내렸을 때
모두 그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안에 몸을 피했는데
어린아이
아줌마, 아저씨
어르신 할 거 없이
그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제 기억이 맞는지 찾아본 내용은 아래에 첨부해 놓았습니다.)
난 오늘 이 일기를 읽으며
그때 열 살이 느꼈을 감정을
오늘날 더 깊이 느낀다.
이때의 그 고마움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나와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주셨던 고마우신 할아버지.
우산 하나가 커봐야 얼마나 컸을까 싶다.
셋이서 우산 하나를 쓰고 걸어갈 때
비에 옷이 젖지 않게 하려고 할아버지께서
비를 다 맞으신 건 아닌지~~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겠지만
나도 그분의 행동을 본받아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 중 한 대목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폭우가 내렸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서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고, 길 건너편에도 또 다른 처마 밑 작은 군중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있었어요.
쏟아지는 빗줄기가 팔과 종아리를 적실 때, 저는 문득 깨달았죠. 저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의 사람들 모두 각자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