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반가운 얼굴도
엄마가 시끄럽다고 했다. 우리는 별안간 조용해졌다.
제2막
무대의 불이 꺼진 상태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난다.
천둥소리가 그치면 번쩍하고 번개가 가운데, 왼쪽, 오른쪽에서 한 번씩 친다.
번개가 칠 때 세 자매의 실루엣이 살짝 보인다.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후다닥 무대로 들어온 엄마.
엄마 :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며 외친다) 다들 시끄러워!
혜원 : (만들고 있던 것을 멈추고 순간 얼어버린다.)
혜주 : (혜미의 손을 잡고 놀던 것을 멈추고 차렷자세를 취한다.)
혜미 : (엄마의 화난 얼굴을 보며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된다.)
세 자매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소란했던 무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무대의 불이 꺼진다.
1982년 10월 25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 아침에는 날씨가 추워서 엄마가 털옷을 입으랬다. 나는 싫다고 그냥 학교에 갔다. 그랬더니 털옷을 아이들이 많이 입고 왔다. 나는 학교에 있을 적에 추워서 내일은 따뜻한 옷을 입고 올 거다.
-엄마 말씀은 다 옳으시단다.
다음에 꼭 시키는 대로 해요.
열 살아 안녕.
내가 살고 있는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구나.
길거리에는 낙엽이 뒹굴고 단풍이 예쁘게 물들기 시작했어.
너도 학교에 오가는 길에 예쁘게 물든 단풍을 보았겠지?
길을 걸으면 얇고 가벼운 오리털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단다.
너는 오리털 패딩이 뭔지 잘 모를 거야.
그땐 거의 솜으로 된 패딩이 전부였지.
여긴 이틀 전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었어.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오고 더위도 찾아오는구나.
너는 열 번의 춘하추동을 겪고 있고
나는 오십삼 년 동안 춘하추동을 겪고 있단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절기는 변함없이 반복이 되네.
그때 너는 엄마가 입으라는 털옷을 안 입고 학교에 갔는데
왜 그랬던 거니?
내가 아는 너는 창피했을 거 같아서 안 입었을 것 같아.
소심한 너는 아이들이 놀릴까 봐 겁도 났겠지.
열 살의 삶의 경험으로 10월에 털옷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학교에서 많이 추웠을 것 같아.
그리고 깨달았겠지.
추울 땐 주변의식하지 말고 누가 놀릴 것 같은 것도 생각 말고 털옷이든 솜옷이든 입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엄마의 삶의 경험이 더 많기에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난 말이야.
추우면 내 몸이 더 우선임을 알게 되었고
감기에 걸리면 내가 손해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에
내가 내 몸을 더 챙기는 어른으로 자랐단다.
어릴 때는 엄마가 챙겨주던 것을
나이가 들면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책임과 의무가 생겨간다는 것을
너는 점점 배우고 성장하게 될 거야.
감기 걸리지 않도록 따뜻하게 입고 다니렴 열 살.
너는 기관지가 약해서 늘 감기를 달고 살았잖아.
그럼 또 만나.
+ 상강(霜降) : 24 절기 중 하나이며, 양력으로는 10월 23일 또는 10월 24일경에 해당된다.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다. 이모작이 가능한 남부지방에서는 보리 파종을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린다. (출처: 네이버 위키백과)
1982년 10월 26일 화요일 날씨 (맑음)
엄마 심부름을 했다. 혜미랑 같이 가게에 갔다. 가게에서 집에 오니까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하고 할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혜미도 뛰어갔다. 나는 큰소리로 할아버지가 왔다고 소리 질렀다.
얼마나 할아버지를 좋아하는지가 글 속에 표현되어 있네요.
엄마 심부름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계신 것을 멀리서 보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오셨다~~~!!!라고 외치며 걸어간 열 살과 뛰어간 세 살.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할아버지의 웃음 짓는 얼굴이 떠오르네요.
네로가 그린 할아버지 그림처럼 참 예쁜 풍경이네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좋아하는 사람, 반가운 사람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을 때
어린아이가 되어 먼 거리에서도 소리 지르며 뛰어가서 기쁨과 행복함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고요.
어린아이들은 커피숍이든 음식점이든 버스정거장이나 공항이나 아파트 단지에서나 놀이터에서 그 어느 장소에서든 기쁜 감정을 맘껏 표현하죠.
엄마...!
아빠...!
이모...!
고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형...!
오빠...!
누나...!
하고 외치며 뛰어가서 안기는 모습이 어찌 그리 예쁘고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네로 :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풍차를 배경으로 할아버지를 그리던 장면이 떠올랐답니다.
1982년 10월 27일 수요일 날씨 (맑음)
청소를 나와 혜주 혜미가 하였다..............................(다음에 계속)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단풍이 예쁘게 들 수록 마음도 바람 따라 낙엽 되어 날아가지 않도록 마지막 잎새처럼 꽉 붙들고 있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0^
+[마지막 잎새] O. 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