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조심, 모여라 꿈동산, 튀김, 지금 세계는
방을 깨끗이 쓸었다. 혜주는 안방을 쓸고 나는 공부방을 치였다. 어머니께서 착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리고 모여라 꿈동산을 보았다. 재미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연탄가스를 조심해야겠다는 것을 알았다.
연탄가스조심!!!
갑자기 찾아온 추운 날씨에 곳곳에서 방한용품을 팔고
일기예보에서도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전하는 요즘입니다.
그 시절 어린이들의 인기 프로그램인 '모여라 꿈동산'을 통해
앞으로 다가오는 겨울에 연탄가스를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열 살이네요.
이 시절엔 대부분 연탄을 때며 살았죠.
연탄 한 장이면 하루가 따뜻했던 시절.
연탄 백장 채워 놓으면 겨울이 든든했었죠.
연탄을 갈기 위해 연탄집게로 들어 올리다 깨 먹기도 하고
시간을 못 맞춰서 연탄불이 꺼졌을 땐
번개탄을 사 와서 불 꺼진 연탄에 불을 붙이곤 했죠.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를
빙판길 위에 뿌려서
미끄러움을 예방하기도 했었고
펑펑 함박눈이 내린 날에는
연탄재를 눈과 함께 굴려서
커다랗고 튼튼한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었죠.
그 시절엔 길도 질퍽거리고
보도블록도 비뚤 빼뚤 거려서
잘못 밟으면 물이 옷에 튀거나 신발이 젖기도 했었죠.
뒷골목의 쾌쾌함과
지릿한 냄새들이 맴돌던 지저분한
80년대 서울변두리의 삶이었지만
친구들과 해가 지도록 실컷 뛰어놀다가
꼬르륵하고 배꼽시계가 울리면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죠.
저녁이면 굴뚝에 연기가 나고
집집마다 분주한 음식냄새가 풍겼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밥과 국과 반찬을 만들어주는 엄마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무거운 어깨를 가진 아빠와
아웅다웅 티격태격 거리며 자라고 있는 세 자매가
동그란 밥상에 옹기종기 둘려 앉아 밥을 먹는 장면은
정지용 님의 향수처럼 제 맘에 향수병을 불러일으키네요.
+참, 그동안 엄마라고 쓰다가 오늘은 어머니라고 썼네요.^^
10월 28일 목요일 (날씨 : 맑음)
오늘 엄마께서 튀김을 사주었다. 엄마께서 혜미를 잘 데리고 놀았다고 사 왔다. 나와 혜주와 혜미가 먹었다. 그때 혜미가 엄마도 먹어하니까 엄마께서 혜미가 최고랬다. 혜주와 나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엄마 사랑을 차지하고 픈 시샘 가득했던 세 자매의 어린 시절.
지금 이 일기를 읽으면 막내의 행동이 참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어린 시절 언니의 입장일 때는 그 행동이 미웠던 것 같아요.
화가 났던 건
엄마가 혜미만 최고라고 해서였어요.
저뿐 아니라 둘째도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는 건.
혜미를 데리고 놀았던 우리도 최고라는 소리를 해줘야 하는데
엄마도 먹어라고 말한 막내만 최고라고 해서였던 거겠죠. ㅎ
어찌 보면 튀김은 막내를 잘 본 대가로 먹게 된 거니까
막내는 튀김을 먹는 일에 아무런 한 일이 없는데도
'엄마도 먹어'라는 그 말 한마디로 인해
'혜미최고"라는 칭찬을 듣게 된 거잖아요.
저와 둘째도 엄마 드세요...라고 하려던 참에
막내가 먼저 기회를 낚아챈 거겠죠?
그래서 더 얄미웠던 것 같네요. ㅎㅎ
엄마는 모두 사랑했을 테지만
첫째와 둘째는 그것을 알리 없네요.
똑같은 사랑을 편애 없이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
어른이 되어보니 말이죠.
10월 29일 금요일 (날씨 : 맑음)
10월 31일이면 우리가 그전에 살던 집에 아줌마의 애기가 돌이었다. 나는 거기에 가니까 골목에다 집을 만들어서 길이 조금 해졌다. 지금 세계는 점점 더 발전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캬...... 예전에 살던 집 골목에 집을 만들어서 길이 좁아진 걸 보고
열 살의 생각은 세계가 점점 발전한다는 것으로까지 확장이 되었네요.
집을 멋지게 만들었나 봐요.
전에 있던 집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고
열 살은 세계의 발전까지 생각을 했네요.
근데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잖아요.^^
아홉 살 때 살던 집은 화장실이 길가에 있었어요.
슬래브 지붕처럼 물결모양이 있는 플라스틱과 나무를 이용하여 사면과 천장을 가린
문도 잘 닫히지 않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푸세식 화장실.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볼 때면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다 들렸던 화장실.
휴지도 귀해서 전화번호부 한 장을 뜯은 후 손으로 부드러워질 때까지 비벼서 사용했었죠.
그러다가 주인집에서 화장실을 집 안에다 만드는 공사를 했는데요.
와..... 네모 반듯하게 시멘트를 발라 만든 그 화장실은 그야말로 깨끗하고 너무 좋았어요.
물론 푸세식이었지만요. ㅎㅎ
그땐
학교 화장실도 다 푸세식이었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웠었죠.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생각이 나서요.
친구들과 짝을 지어 신발주머니를 들고나가서
학교 옆 화장실 건물에 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실내화로 갈아 신은 후 교실에 들어왔었죠.
10분 동안 이 번거로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그 시절의 모든 어린이들이 기특합니다.
5학년 때쯤인가 그때쯤 화장실 공사를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그렇게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어린아이들이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하고
지저분한 것들을 별 내색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그렇게 자라고 컸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거든요.
지금은 그때에 비해 얼마나 쾌적하고 편하고 좋은 환경인가요.
그럼에도 조금만 불편한 환경의 여행지에 가면 비교의식이 발동하고
괜한 우월의식이 생겨나는 모습을 보니..... 저 아직도 멀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