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 1월 13일
1월 11일 화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시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닭을 사 오셨다.
닭은 알이 4개나 들어 있었다.
엄마께서는 저녁에 닭갈비를 해주셨다.
맛이 있었다.
어떤 고기는 찔겨서 이빨을 다칠뻔했다.
혜미는 재롱을 부렸다.
엄마 아빠 우리는 모두 웃었다.
이 일기를 읽으며 문득 생각해 본다.
닭갈비의 원조는 혹시 엄마였던 건 아닐까 하고.
1983년에 이미 닭갈비라니.
엄마의 기막힌 음식 솜씨는 예나 지금이나 늘 감탄을 자아낸다.
어릴 적 시장에는 늘 닭집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닭을 직접 잡았다.
드럼통처럼 생긴 커다란 냄비 안에는 펄펄 끓는 물이 가득했고,
갓 잡은 닭을 넣었다 건져 털을 뽑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닭의 털이 그렇게 뽑힌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린 나이에도 재래시장 안 닭집 앞은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비릿한 피 냄새와
생명이 사라진 자리에서만 나는 독특한 노린내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털이 뽑혀 반들반들해진 닭의 배를 가르면
그 안에는 노란 알이 들어 있었다.
오늘 사온 닭의 배에도 알이 네 개나 들어 있었나 보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 떠오르곤 했던 기억도 함께 따라온다.
닭고기에서 가장 질긴 부위는 어디였을까.
질긴 고기를 씹다 이빨을 다칠 뻔했던 열한 살의 저녁.
배를 두둑이 채운 뒤
혜미의 재롱에 온 가족이 웃었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다 보니,
나는 그 장면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풍경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용히 아려온다.
1월 12일 수요일 날씨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아빠와 엄마께서 작은집에 갔다.
나와 혜주 혜미는 집을 보았다.
혜미가 배고프다고 해서 나는 우유를 타줬더니 혜미가 잤다.
엄마께서 6시에 오셨다. 아빠께서는 볼일을 보러 나갔땠다.
엄마가 오니까 정말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엄마께서는 우리가 혜미를 재웠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열한 살에게
사람 사는 집이란
엄마가 있는 집이었다.
엄마가 없는 시간은
아마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특히 막내가 배고프다며 징징거렸을 때는
얼마나 난감했을까 싶다.
분유를 먹고 잠든 혜미.
이제 겨우 네 살, 아직은 온전히 아기였을 나이.
엄마가 없는 동안 언니들을 의지해
분유를 먹고 잠들었을 모습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엄마는 열한 살에게
태양 같은 따뜻함이었고
품처럼 포근한 존재였으리라.
지금도 여전히.
1월 13일 목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12시에 큰집에 우리 식구 모두 갔다.
자전거도 타고 놀았다.
그리고 찰흙으로 케익을 만들어서 성냥개비를 꼽았다.
큰 아빠께서 나이타로 불.............. (다음에 계속)
겨울방학이어서
자전거포를 하던 큰집에 놀러 간 것 같다.
온 가족이 함께 갔으니
그 시절 나름의 가족 나들이였을 것이다.
아이들끼리 찰흙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성냥개비를 꽂아 놓았는데,
일기는
“큰아빠께서 라이터로 불……”
이라는 문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렸다.
큰아빠는 라이터로
과연 어떤 행동을 하셨을까.
불을 붙였을까,
웃으며 장난을 쳤을까,
아니면 모두를 놀라게 했을까.
끊긴 문장 하나가
오히려 그날의 풍경을
더 오래 붙잡아 둔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