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는 조심스러웠고, 고무줄은 자유로웠다

1월 14일 ~ 1월 15일

by 푸른 잎사귀

(앞의 내용에 이어)


을 켜주셨다.

우리는 무척이다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휴하고 불을 껐다.

그랬더니 큰엄마께서 노래도 안불르고 끄냐고 하셨다.

우리는 막 웃었다.



아이들은 찰흙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초 대신 성냥을 꽂았다.

큰아빠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셨고,

신이 난 우리는 “후—” 하고 불을 껐다.

노래도 안 부르고 끄냐고 하신 큰엄마의 한마디에

우리는 그저 깔깔 웃었다.


아이들의 놀이를 나무라지 않고

그 순간에 기꺼이 들어와 함께 웃어주던

큰아빠와 큰엄마.


그 장면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사랑이 있었다.

그날의 웃음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또렷하다.




1월 14일 금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오늘은 아빠께서 쇼파를 사 오셨다.

참 좋았다.

우리들은 먼지가 날 때까지 막 놀았다.

아빠께서 야단을 호랑이 같이 치셨다.

우리는 잘못했읍니다 하고 방에 들어가서 놀았다.

엄마께서는 얌전하게 놀으니까 시끄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혼을 내시면

보통 엄마는 말리거나 다독여주셨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엄마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새로 산 소파 위에서

먼지가 날 정도로 뛰어놀았으니

아빠가 호랑이처럼 포효한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소파의 값도,

그 물건이 갖는 의미도 알지 못했다.

입장이 바뀐 지금이라면

나 역시 호랑이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세 자매는 여자였지만

노는 것만큼은 남자아이 못지않게

짓궂고 드셌다.


팽이, 딱지, 구슬, 탁구까지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놀았다.


남자 형제가 없었기에

차별도 없었고,

여자라서 안 되는 일도 없었다.


엄마는 가끔 말씀하신다.

아들 하나 있었으면

우리는 찬밥 신세였을 거라고.


그래서인지

그 시절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아들과 딸〉이 떠오른다.


천재여류시인이었던

허난설헌의 설움도 생각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능력이 가려지는 일만큼은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겐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1월 15일 토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작은 아빠가 오셨다.

명희언니도 왔다.

우리는 쇼파에서 솝꼽놀이를 하고 놀았다.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고무줄을 하였다.

명희언니도 하였다.

내가 깍두기였다.

나는 참 편하다.

술래도 안돼고 못하면 못하는 데로 하니까.

그리고 한 사람이 모잘라서 전보때에다 하였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왜 하필 소파에서 소꿉놀이를 했을까.

재미도 없었다는 문장에는

이미 한 번 혼났던 기억이

조심스레 배어 있는 것 같다.


역시 아이에게는 밖이 최고다.

1월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무줄놀이를 하러 나갔으니

얼마나 심심했을지가 예측이 된다.


나는 깍두기였다.

깍두기는 편하다.

술래도 안 되고,

못해도 괜찮다.


사람이 모자라면

전봇대에다가

고무줄을 걸었다.

그 풍경이 지금 생각해도 참 정겹다.


실컷 놀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던 아이들.


밥을 해주는 엄마가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엄마의 밥.

엄마가 있는 집.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이 그립다.


깍두기처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조금은 편하게,

요즘은 더더욱

그렇게 살고 싶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