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열한 살의 섭섭함을 달랬을까?

1월 19일 ~ 1월 20일

by 푸른 잎사귀

심했다. 그때 정연이가 와서 재미있게 놀았다.

솝꼽놀이도 하고 술래작기도 하였다.

그러나 재미가 없었다.

혜미가 가니까 심심했다.

집에 있을 주게는 말썽을 피우지만

가고 나니까 섭섭하다.

빨리 혜미와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



열한 살의 섭섭함이 느껴진다.

같이 있을 때는 치고받고 싸우고,

욕심부리고 말썽 부리는 막내를 때리고 싶다가도

막상 눈에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열한 살은 ‘섭섭함’이라고 불렀다.


엄마와 동생이 없을 때는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도 재미가 없고,

친구가 놀러 와 소꿉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해도 즐겁지 않다.


열한 살의 세계에서는

엄마가 전부이고,

가족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 전부 중 일부만 남아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열한 살은 섭섭함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1월 19일 수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정연이가 와서 눈가리기를 하였다.

내가 술래였다.

나는 자꾸만 잡으려고 해 봤지만 못 잡았다.

숨이 차서 쉬고 있을 때 정연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몰른체하고 몰래 정연이를 끌고 갔다.

정연이는 하난 얼굴이었다.



정연이는 어김없이 오늘도 놀러 왔다.

오늘은 눈 가리기를 하며 놀았다.

나는 술래였기에 정연이를 잡아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상태로 온방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숨이 차

잠시 쉬고 있었는데, 그때 열한 살은 나름의 머리를 굴린다.


‘지금은 안 잡을 거라 생각하겠지.’

그 방심한 틈을 이용해

마침 옆에 있던 정연이를 잡아낸다.


놀이였지만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있었던

열한 살이었나 보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전략과 전술, 작전과 계획, 실패와 성공이 있다.

그 모든 경험 속에서

열한 살은 오늘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1월 20일 목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나와 혜주가 인형옷을 만들었다.

나는 3개 혜주는 7개 그때 정연이가 와서 재미었게 만들었다.

나는 치우고 솝꼽놀이를 정연이와 하였다.

정연이는 실타고 하고 고무줄을 하쟀다.

우리는 고무줄을 열심히 하였다.



오늘도 정연이가 놀러 왔다.


오늘 나 작가님께서 정연이와 아직 연락을 하는지 물어보셨는데,

사실 나는 일기를 읽기 전까지

정연이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릴 적 그렇게도 매일 얼굴을 보며 놀던 친구가

언제, 어느 순간부터 기억에서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다.

머릿속에 아예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참 묘하게 느껴진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처받고,

때로는 사랑받으며

관심과 오해, 시기와 질투, 응원과 격려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완성시킨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 시절의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정연이는 소꿉놀이를 하자고 했고

나는 인형옷 만들던 것을 치웠다.

그러다 고무줄을 하자고 하면

또 소꿉놀이를 치우고 고무줄을 했다.


정연이의 요구를 묵묵히 맞춰 주던

나와 동생이 참 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득,

예전에 주워 온 인형 모자로 옷을 만들다가

이상해서 후회했다는 일기가 떠올랐다.

그 아이가 오늘은 인형옷을 세 개, 일곱 개나 만들었다니.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떻게 바느질을 했을지,

한참을 떠올려 보게 된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