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 ~ 1월 26일
1월 24일 월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오늘 그림을 그렸다.
상상하여서 그렸다.
물감으로 그렸다.
참 잘 그렸다.
그전대 그린 그림보다 아주 좋았다.
혜주는 나보다 더 잘 그린 것 같다.
혜미도 그렸다.
그런대 물감을 다 짜났다.
그리고 손에 물감으로 번벅을 하였다.
우리는 그걸 보고 웃었다.
이 문장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상상하여 그리기’를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맡기게 되는 건 아닐까.
오늘, 열한 살은 어떤 그림을 상상하며 그렸을까.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 열한 살의 손과 마음은 어땠을까.
혜주는 나보다 그림을 잘 그렸던 것 같다.
예전 일기에는, 혜주가 인어공주를 너무 잘 그려서 화장실에 간 사이 검은색으로 덧칠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오늘도 혜주가 나보다 더 잘 그린 걸 보면, 아마도 그때부터 이미 실력이 더 좋았던 모양이다.
질투가 났을 법도 한데, 열한 살은 그 마음을 접는다.
지난번 행동으로 엄마에게 혼이 난 이후였기 때문일까.
혜미는 물감을 다 짜놓고 손에 범벅을 해두었다.
그 장면을 보고, 열한 살은 혼내지 않고 웃었다.
지난 일기에서는 혜미가 뭘 더 사달라고 해서 얄미워 때리고 싶다고까지 썼었는데,
이날의 마음은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타타타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열한 살의 마음도, 지금의 나의 마음도
다 안다면 재미없는 걸까. ㅎ
1월 25일 화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정연이와 혜주는 배드멘트를 하고 나는 스카이콩콩을 탔다.
나는 양쪽 다 하는 베드멘트 구경하다가 중심을 못 잡아서 엉덩방아를 찓었다.
혜미가 그걸 보고 배가 아프도록 우서 댔다.
나는 엉덩이가 아파서 못 일어날뻔했다.
그래도 나는 재미있었다.
배드민턴 공이 양쪽으로 오가는 걸 보며
스카이콩콩을 타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다.
‘못 일어날 뻔했다’는 문장을 읽는데
그 순간의 통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언니 아파? 괜찮아?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어린아기라서였겠지만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는 표현이 왠지 섭섭하다.
이 시절의 나는 엉덩방아를 찧어도 금이 가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코로나 시기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왼쪽 5번 갈비뼈가 부러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여름에 복대를 하고도 더운 줄을 몰랐을 만큼,
몸보다 마음이 먼저 놀랐던 날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뼈는 약해진다.
그래서 더 천천히, 더 조심히 다녀야 한다.
넘어져 다치면 결국 손해는 나의 몫이니까.
이 글을 읽는
갱년기를 지나고 있거나 지나온 작가님들,
부디 뼈 조심하시길.
1월 26일 수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혜주 혜미랑 인형놀이를 하였다.
내 인형이름은 꽈리 혜주는 루시 혜미는 라라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나는 재미있었다. 그런데................(다음에 계속)
내 인형 이름은 ‘꽈리’였다.
와, 나의 작명력.
지금 다시 봐도 참 좋다.
꽈리라니.
뭘 알고 지은 이름이었을까.
나는 주홍빛 꽈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브런치에 처음 프로필 사진을 올릴 때도
꽈리 사진을 사용했었다.
왜 좋아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냥 그 모습이 고풍스러우면서 정겨웠는데
이미 열한 살의 내가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일기를 통해 알게 되어 기쁘다.
다시 그 사진을 찾아봐야겠다.
혜주는 루시,
혜미는 라라.
동생들이 지은 이름도 예쁘다.
‘그런데…… ’
이다음 이야기가,
괜히 더 궁금해진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