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 11일
서기 1982년 4월 11일 (일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동생을 본 것
일어난 시각 오전 : 6시 15분
오늘은 엄마께서 시골에서 가지고 오신 필통과 연필을 줬다. 나와 동생은 기분이 좋았다. 나는 연필이 좋아서 한 자루를 깎으려고 엄마한테 말하니까 엄마께선 쓰던 연필 먼저 쓰랬다. 나와 동생은 할 수 없이 연필을 깎지 않았다.
-엄마께 고마운 마음을 갖도록
그리고 언제나 물건을 아껴 쓰는
태도를 갖도록 해요
잠자는 시각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가난했던 그 시절엔 모든 게 귀하고 비쌌었다.
도루코칼로 연필을 깎아 쓰다 손으로 잡히지 않는 몽당연필이 되었을 때는 볼펜대에 연필 반대쪽 끝을 깎아서 끼워 넣어 사용했었다.
친구들끼리 내 연필이 더 작다며 내기를 하기도 하였었다.
종이도 연필로 썼다가 그 위에 볼펜으로 쓰면서 깜지를 하곤 했다.
뭐든지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었었다.
외할아버지는 가게를 하셨는데 문구도 파셨다.
엄마가 시골에 가셔서 가지고 오신 연필과 필통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게 풍부해졌다.
초등학교에서 돌봄 교사로 일했을 때
교실바닥에 한 번도 사용 안 한 연필, 지우개, 색종이가 있어도 줍지 않고 밟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주우라고 말하면
"제꺼아닌데요"
하고 줍지도 않고 오히려 발로 밟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은 겉은 풍부하지만
속은 빈곤해진 거 같다.
그 시절엔 빈곤했지만
속은 여유와 인내와 기다림이란 것으로 풍부했던 것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경험한 세대라서 그런지 아끼고 절약하는 게 더 편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꾸준한 게 더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살면서
빠른 정보 검색과 신속하고 놀라울 정도의 자료정리 내용을 보면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검색을 하고 도움을 받는 건 좋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의지하지는 말자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허용된 상황 속에서도
적절한 사용을 위해 때론
절제의 미덕도 생각해 본다.
생각도
글쓰기도
책 읽기도
속도보다
깊이가 있자고
아무 생각 없이
빼앗기는 시간을 아끼자고 절약하자고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