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놀이

1982년 4월 19일

by 푸른 잎사귀

서기 1982년 4월 19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방청소

일어난 시각 오전 : 7시


오늘은 동네 아이들과 같이 학교놀이를 하였다.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정은언니가 방해를 하였다. 내가 선생님인데 정은언니가 선생님을 한 대니까 아이들이 모두 자기 집에 가서 놀았다. 나는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정은언니하고 싸웠다. 나는 정은언니한테 졌다. 그래서 울면서 집에 왔다. 엄마께서는 왜 울고 오냐고 물었다. 나는 정은언니가 때려서 그런다고 하니까 엄마께선 정은언니를 야단치셨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말했냐면은 다음부터는 혜원이하고 싸우지 말라고 하니까 네하고 말했다. 나는 정은언니한테 약 올리면서 집에 왔다.


-그러면 되니. 언제나 사이좋게 양보하면서 친하게 지내야지.


잠자는 시각 오후 :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정은언니에게 약을 올렸다는 거 사실일까?

정은언니에게 맞아서 울면서 온 나를 보고

엄마가 대신 혼내주어서

기분 좋은 것을 그렇게 표현한 거 아니었을까?

나를 때린 언니가 혼나는 모습은 샘통이었을 거 같다.


가끔 어렸을 때의 내 행동이

진짜 내 모습이었을까 싶을 때가 많다.

일기도 꾸며낸 건지

상상 속의 모습을 쓴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써준 글이

조금은 아쉽다.


정은언니가 먼저 방해를 했고

내 친구들을 다 집으로 가게 만들었고

나를 때려서 내가 울면서 집에 갔다고 썼는데

기분이 상해있는 나의 감정에 대해선 말이 없으시고

내가 정은언니를 약 올린 행동만을 나무라셨다.


만약 내가 담임이었다면


혜원이가 많이 속상했겠구나


이 문구를 하나 더 써주었을 것이다.


혜원이가 많이 속상했겠구나.

그렇지만 언니를 약 올리는 행동은 옳지 못해요.

언제나 사이좋게 양보하면서 친하게 지내렴.


내가 자라던 그 시절에는

감정을 읽어주고

보듬어주는 문화가 아니긴 했다.


만약

그때

지금같이

감정은 읽어주고

행동을 수정해주려 했다면

더 바르게 잘 자랐을까?

정신이 건강한 아이로 잘 자랐을까?


글쎄

그랬을 수도


나의 감정을 읽어주었던 경험이 부족한지라

지금의 내가 아이들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려 하고

공감해주고 나서 행동을 수정해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게 참 어렵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욱~하는 감정을

자주

누르고


천천히

또박또박

침착하게

감정을 싣지 않고

말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그게

어른과 다른 점 같다.


일기 속 정은언니와 혜원이는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