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담자로 사는 이유

오롯이 나로 설 수 있는 곳, 나로심리상담센터

by 최혜숙

초등 6학년 때로 기억한다.

같은 반에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한 남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덩치가 큰 그는 매일 새벽 신문배달을 하느라 등교 전에 지쳐 있었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 도시락도 준비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선생님은 홀연히 교실을 떠나셨고

60명이 넘는 반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

그 친구는 맨 뒤 책상에 앉아 조용히 앞만 보고 있었다.

당시 반장이었던 나는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친구들의 도시락에서 밥과 반찬을 조금씩 나누어 그에게 건넸다.

내심 걱정도 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활짝 웃으며 받아 맛있게 먹었다.


어른이 된 후, 문득 그 친구가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친구의 손길이 고마워

짧은 손 편지를 건네주었던 그 남학생.

"고마워, 그리고 나 너 좋아해"

왜 그랬을까.. 읽는 순간 당황해 손 편지를 던져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그 친구의 표현이 어쩐지 징그럽다고 느껴졌다.

던져진 손 편지를 물그러미 바라보던 그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후 도시락 나눔은 중단되었다.


이 기억은 오랫동안 나에게 마음의 짐이었다.

돌봄이 부족했던 친구에게 나는 친구 같고, 누나 같고, 어쩌면 엄마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행동이 그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용기 있는 마음을 서툴게 외면했다.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 나의 나눔은 값싼 연민이었을까?

내 방식이 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 편지가 눈앞에서 버려진 순간,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오래 괴롭혔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어, 겨우 초등 6학년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끝내 내 편이 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였고, 나는 그걸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 그에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 편지를 던져버린 건 내 잘못이야"


내가 상담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마도 이 기억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했던 나는 유독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외면했던 타인의 마음을 더는 거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그 감정을 함께 호흡하는 일.

그들이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상담자로 살아가는 이유다.



우리는 누군가의 봄이 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어느 서평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것 세 가지는 꽃, 글, 그리고 당신임을...

아무리 세상이 척박해도 희망은 있다.

그것이 한 줄의 글이 될 수도 있고,

길모퉁이의 한 송이 꽃이 될 수도 있으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들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상담자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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