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간 소감문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상담을 진행하다 어느 순간이 다가오면, 두 사람 간의 논의와 성과를 중심으로 상담은 마무리된다. 그때 상담사가 살그머니 내미는 소감문 작성지를 내담자는 대면하게 된다. 내담자가 다시 건네주는 소감문은 상담사인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귀한 선물이다.
상담 과정 중에 어찌 기분 좋은 밝은 햇살만 서로 느낄 수 있었으랴. 그것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상담사 앞에서 수치심을 드러내야 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때로는 분노의 감정을 움켜잡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결국 상담사에 대한 신뢰감이다.
내담자가 느끼는 강렬한 감정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상담사는 그의 감정을 함께 버텨낸다. 그의 손을 잡으며 가슴으로 함께 울기도 한다. 수년 혹은 수십 년간 경험했던 감정과 에피소드가 어찌 한두 번의 만남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그런 긴 여정을 마치고 비로소 변화된 모습, 혹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고유의 원형을 마주하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종결을 이야기한다. 그 험난한 여정을 마친 두 사람이야말로 진정 신뢰로운 관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담자가 걸어온 마음의 길을 정리하는 과정은 스스로에게는 성장의 매듭을 짓는 시간이 되고, 상담사인 나에게는 그간의 여정을 되짚어보며 스스로를 점검하는 겸허한 순간이 된다.
작년 겨울, 한 내담자분께서 정성스럽게 적어주신 소감을 읽게 된 순간, 나는 상담 기간 중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뜻밖의 풍경들을 만났다.
첫째, 무심코 행했던 루틴의 무게다. 그녀는 상담실의 청결함, 미리 준비된 물과 음료, 그리고 예약 확인 문자 같은 작은 배려들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상담의 기본이라 여기며 반복했던 나의 루틴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 입은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는 소중한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특히 "이전 상담 내용을 세세히 기억해 주는 모습에서 신뢰를 느꼈다"는 대목에서는 뭉클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아찔하게 머리를 스치고, 더 나은 상담 환경을 일궈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둘째, 마음의 근육을 회복하며 얻은 세 가지 선물이다. 그녀는 이번 상담이 자신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었다고 고백했다. 타인에 대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이상한 성격'이라 치부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성향'임을 인정하게 된 '자기 수용'. 과거의 기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고 감정 소모를 멈추게 된 '과거와의 작별'. 그리고 어른이 되어 잊고 지냈던 온전한 지지를 경험하며 마음의 근육을 회복한 '조건 없는 응원'이 그것이다.
2024년 무더운 여름부터 25년 겨울까지, 그녀와 함께 한 시간. 때로는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내 어깨에도 묵직하게 전해져 오곤 했다. 하지만 섬세함 이면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누구보다 강인한 의지가 숨어 있었기에 우리는 기꺼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상담사인 나는 그저 그녀의 마음 길을 묵묵히 동행했을 뿐.
그녀는 "상담사와 잘 맞는 것도 운인데, 나는 참 운이 좋았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 변화를 일궈낸 것은 오롯이 그녀의 절박한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으로 버텨온 시간들. 이제 그녀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단단하게 다져진 마음의 뿌리가 그녀를 지탱해 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비로소 사랑하게 된 그녀에게, 상담사가 아닌 인생의 한 동료로서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낸다.
"진심으로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귀한 삶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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