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잘하는 아이'의 안부를 묻는 아침
밤사이 소복이 쌓인 눈이 세상을 덮었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이 한가한 오전의 공기를 좋아한다.
작년 5월부터 12월까지,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나를 오늘은 한껏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향기를 맡으며 온몸의 피로를 씻어내려고 애쓰곤 한다. 아내게 주는 작은 보상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난 후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난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 즐거움으로 나를 채운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자극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깊은 '편안함'이라는 것을.
어릴 적에도 그랬다. 즐거움을 쫓기보다는 나는 늘 무언가를 하는 아이였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을 조물 거리고, 몸을 꿈지럭대며 할 일을 찾아내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두고 "한 번도 매 들지 않고 손 갈 데 없이 키운 자식"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나는 그 말이 왠지 서글프고 마음 한편에서 짠했다.
'알아서 잘해야만 했던 아이'의 등 뒤에는 얼마나 많은 긴장감이 서려 있었을까.
상담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유독 마음이 쓰이는 분들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몫을 완벽히 해내는 분들이다. 그들을 볼 때면 거울을 보듯 감정이입이 빨라진다.
'이 분은 어떤 상황 때문에 일찍이 어른이 되어야만 했을까'
내가 성장하던 6,70년대에는 '알아서 잘하는 것'이 미덕이자 생존 전략인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2, 30대의 젊은 내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풍요로운 시대라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욕구보다 '책임'을 먼저 배우며 자랐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나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알아서 잘해온 이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꿈지럭대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내딛는 발자국처럼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직 나의 편안함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 한다.
#상담사
#심리에세이
#위로
#번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