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진은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닌, 함께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많은 사설상담센터가 그러하듯 나 또한 면세사업자로 등록하며 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제 5년 차, 정확히 말하면 1인 창업자이다. 작년부터는 오랫동안 함께 했던 상담사와 협약하며 운영 중이니 나름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다.
센터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기관에서 만났던 내담자들의 '센터 있으세요?'라는 질문 덕분이었다. 이제 나만의 공간을 가꿀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까?, 아니면 나름의 교만함이었을까, 그렇게 시작한 창업이 이제 5년이다. 그때 난 창업하길 참 잘했다 싶다.
공공기관이나 학교와 협약을 맺으며 센터운영에 도움을 얻기도 한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결국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는 분들이고 기관이지 않은가.. 기관과 연계되어 방문하는 분들과 비용을 직접 지불하고 오시는 분들과의 만남은 달랐다. 더 치열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난 5년을 보냈던 건 나를 믿고 찾아주는 이분들 덕분이었다.
학회자격증을 취득한 후의 5년이란 시간은 내게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었다. 이전의 상담경력 10년(물론 무자격으로 상담을 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학회자격증은 그만큼 상담계에서는 최고의 자격증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은 열정은 하늘을 떠받칠 만큼 컸지만 부족한 스킬로 좌절했던 시기였다. 내담자의 눈물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황했던 경험이 생생하다. 이제 16년 차 상담사가 되어 이제 나를 점검한다.
상담사는 보람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여정의 끝에 '변화'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올 때는 함께 널뛰며 기뻐했다. 인정욕구와 성취욕이 강한 내게 상담결과는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어느덧 16년 차의 문턱에서 나는 새삼 내 삶을 다시 조망해 본다. 짧은 회기 내에 타인의 역동을 탐색하며 나는 늘 소진되곤 했다.
내게는 말하지 않았던 아픔이 있다. 가정에 경제적 위기가 닥쳤던 것이 코로나 시기였다. 남편의 마지막 사업이 고전하며 우리 가족은 벼랑 끝에 섰다. 나의 센터운영 뒤에는 가정을 지켜야 했던 숨 가쁜 노력이 숨어있었다. '아, 상담이 생계형이 되면 안 되는데.' 그런 자책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상담을 했고, 그 절박함은 역설적으로 내담자를 살리는 동력이 되었다. '생계형'이었기에 더 치열하게 내담자의 삶에 밀착할 수 있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건 오롯이 내 삶이었다. 더 공부하고 수련받고 싶었던 역량 강화의 기회들을 뒤로 미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내담자와 마주할 때면 격한 공감이 일어난다. 가슴속에서 느끼는 고통이 전해졌다. 내 삶이 그들에게 거울처럼 비치고, 서로가 서로를 미러링 하며 우리는 함께 울었다.
만약 경제적 위기 앞에서 내 삶이 포기로 끝났다면, 나는 내담자들에게 결코 용기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는 나를 꿈틀거리게 했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타인의 자존감을 위해 나를 소진시키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소진은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와 함께 타오르는 불꽃이었다는 것을. 나를 희생하며 가족을 지켜온 지난 5년의 시간에게 이제 말해주고 싶다.
"참 잘했다, 그리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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