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선에서 유유히 달렸던 초보 운전자의 고백

by 최혜숙


"아, 핸들 꺾으라니까! 좌측!!"


십 년 전이었을까 20대 때 따놓은 운전면허증이 장롱면허가 되어갈 무렵, 나는 운전이 필요한 순간을 맞았다. 당시교육청 소속으로 상담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서울 시내 학교를 방문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를 만나야 했던 상황이 잦았다. 대중교통으로는 버거웠다.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던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와 상담자료들, 놀이도구와 카드들까지. 한 보따리나 되는 가방을 들고 다니다 보면 가다가 힘이 다 빠지기 일쑤였다.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내 몸의 고단함이 그들에게 전이될까 두려웠다.


말 그대로 장롱 속에 묻혀있던 면허증을 찾아 운전을 다시 배워야 했다. 시내연수를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자, 남편은 '내가 있는데 뭐, 걱정하지 마"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 말이 처음엔 든든했지만 차츰 원망으로 변했다.


"가르쳐줄 거면 곱게 가르쳐주지!"

"혼자 할 수 있으면 왜 연수를 받아!"


결국 참다 참다 터진 눈물을 보며 남편은 어찌할 줄 몰라했다. 나는 그게 더 화가 났다.

연수 내내 나는 남편의 구박댕이였다. 얼마나 서럽고 서러운지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올라온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편이라는 권위 아래 두었다는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던 시간이었다.

그 서러운 연수를 어찌어찌 끝내고 조심조심 초보운전자답게 난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 1차선의 의미도 모른 채 유유히 나만의 속도대로 1차선을 달렸다. 어디선가 빵빵 경적이 울려도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 채 나만의 속도대로 다녔던 것이 가장 민망하다. 인생에서도 나는 남의 경적 소리(사회적 기준)를 못 들은 척하며 내 속도를 고집해 본 적이 있었던가. 차선변경이 너무 무서워 돌아 돌아 먼 길을 갔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렇게 내 초보운전대가 10년을 넘어갔다고 한다.


10년 동안 내 삶과 함께 한 것이 어쩌면 나의 운전대가 아니었을까,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할 때 함께 했던 것이 나의 운전대였다. 화가 나면 차속에서 소리를 냅다 지르거나 아픔으로 고통스러울 땐 음악을 틀고 하염없이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인생이 허물어지는 아찔했던 그 순간에도 묵묵히 나를 지켜준 것이 그 운전대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태생적인 길치다. 방향만 돌려도 좌우를 식별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는 길치.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느낌은 세상의 길치만이 안다. 내비게이션이 오른쪽이라는데, 내 몸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왼쪽으로 향한다. 길치에게 좌우는 방향이 아니라 그저 혼란의 이름일 뿐이다.

그런 나에게 운전은 참으로 고마운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조심스러운 내 성향 덕분에 큰 사고 없이 10년을 지내왔다.


지난해 12월 말, 10년 만기가 되어 새로운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반짝반짝 코팅된 면허증을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을 잘 운전하며 지금까지 왔던 걸까. 타인의 인생 항로를 함께 고민하는 상담사가 된 지금의 나, 정작 내 인생의 항로는 어디쯤 와닿아있는 것일까. 서툴고 덜덜 떨리지만 내 속도대로 페달을 밟아온 내 인생은 과연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내 속도를 제대로 내보지 못한 내 삶의 '나만의 속도'를 내보고 싶은 건 아닐까. 그 마음이 맞다. 내 인생을 내 속도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더 이상 늦었다고 말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10년 전, 뒤차의 경적을 받으며 10km로 기어가던 나, 이제는 남편이 정해준 속도가 아닌, 오로지 내가 밟는 만큼 나아가는 60km의 정속 주행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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