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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한 동기 황당한 결말 2

선물 받은 책방

by Blessed To Bless

만든 책을 응모하고 난 다음에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느낌이랄까... 다시 여유롭게 다음날을 기다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진짜 폭풍은 그다음이었다. 며칠 후, 응모했다고 철떡 같이 믿은 나의 그 볼품없는 첫 작품은 응모자들 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 지나쳤을까 싶어 위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꼼꼼히 살펴보기를 여러 번.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훑어봤는데도… 없.었.다.


알고 보니 책을 만든 후에 '발간하기'를 해야 했고 '응모하기' 버튼까지 눌러야 비로소 접수가 되는 과정인 것을 잘 숙지하지 못했던 나는 브런치북 만들기로만 응모과정이 다 끝난 줄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마감날짜가 지난 후였다. 나는 그 소란을 피우고도 응모도 못한 채 얼렁뚱땅 만들어진 나의 첫 책을 눈물을 머금고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만 했다.


황.당.했.다....


'어휴~ 내가 그렇지 뭐~~ 무슨 글을~~~ 쓰긴 뭘 써~!!'


들을 때마다 매번 힘들고, 또 제일 싫어하는 내면으로부터 메아리쳐오는 자기 디스의 말들이 애써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계속계속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게다가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였던 피곤함까지 한꺼번에 나에게 들이대었다.


쪽팔리기과에도 들어갈 수 없는 이 무지한 나의 컴맹 수준에 허당과 덜렁댐을 합체해 놓은 그 중간 어디메쯤.... 에서 나는 이렇게 또 내 인생의 황당한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우울해지기 싫어서 빗자루를 들었다.


먼저 커피소년의 "나를 사랑하자"를 "를 아무도 없는 집에 꽉꽉 채우다 못해 집이 떠나가버릴 만큼 크게 틀었다. 갑자기 성격만 캔디소녀로 변신하여 제법 씩씩하게 빚질을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어제처럼 미련한 나를 사랑하자

구석진 방 홀로 있는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캄캄한 오늘을 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꼿꼿이 서 있는 나를 향한 노래


거북이 느린 걸음으로

발버둥 치며 걷는 나에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도

내 마음 지키는 나를 향한 노래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어제처럼 미련한 나를 사랑하자

구석진 방 홀로 있는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여전히 아름다운 나를 사랑하자

눈물로 보석을 삼은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거실이랑 부엌이랑 현관어귀까지 걸레질을 하며 엄청 따라 불렀는데도....

그런데도...,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구든, 어떤 말로 위로해 준다 하더라도 다시 나를 사랑하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이 노래를 100번 넘게 들어도, 예수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해도,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 어떤 숭고하고 파워풀한 신의 사랑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쩌어기 밑바닥에 처박혀 있는 나를 끌어올려주진 못하실 것만 같았다.


'어제처럼 미련한 나'만 공감됐지, '여전히 아름다운 나'는 이제 더 이상 거기에 없었다.


'에이 씨... '찬란한 미래'를 꿈꾼 것도 아니고 고작(?!) 오백만 원 노린 거였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나 자신이 밉상스럽기까지 했다.


가족들에게 내비칠까 봐 몰래몰래 슬픔을 흘려가며 또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건사하고, 남편을 챙기고.... 나에게 걸맞은 익숙한 "주부의 나"로 다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거처럼. (그 와중에 노래는 계속 따라 불렀다. 속으로. ㅎㅎ)


한 개도 잘못한 게 없는 애꿎은 브런치만 박대하며 보내버린 며칠 후, 심술 맞은 마음을 털어내 버리고 착한 마음으로 다시 브런치에게 다가갔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훌륭한 글들이 가득했다. 그 주옥같은 작품들을 몇 시간 동안 읽어 내려갔다.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아이들 데리러 갈 시간이 다 된 줄도 모를 만큼 꿈같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한국 신간들을 읽고 싶어도 운송료에 책값도 만만치 않아 늘 망설였었고(뭐 읽을 짬을 잘 못 만들기도 하지만) 그 핑계로 변변히 독서라는 것을 해본 적이 백만 년쯤 전이었다. 그런데 브런치 안에 들어있는 엄청난 양의 글들을 대하고 보니 감개무량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부러운 필력을 가진 작가들이 그야말로 차고 넘쳤다. 내 글은 댈 것도 아니었다.


꼬옥 맞는 글자 한자, 문장 한 줄을 써넣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고민의 시간들을 그 속에 쏟아부었을 응모자들의 각려는 감히 값을 매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하마터면 크나큰 무례를 저지를뻔했다. 그 남모를 고뇌를 아주 조금은 안다 말할 수 있기에 멍청한 실수였지만 응모 못한걸(?!) 그때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또다시 생각해 보니 대신 너무나 근사한 책방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참.... 인생은 그렇다.

(과연 내가 함부로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곳을 향해 간절히 바라고, 계획하고, 가보려 하지만 늘 그곳에 다다르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도 않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가 다반사다. 그러나 그 실수(실패)를 또 다르게 바라보면 결국은 그건 삶이 나에게 주고자 했던 필요한 선물이자 지혜의 경험치로까지 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실패담들은 누군가를 돕고 또 일으킬 수 있는 재료로 쓰임 받는 일을 종종 경험했기에)


누가 준다고 장담한 적도 없는 그 오백만 원을 탐냈던 덕분에 나는 상상 속에서도 갖고 싶었던 미녀와 야수 여주인공 벨의 도서관을 가진 거나 진배없게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은 참... 사랑스럽다.

그리고...(쑥스럽지만)

나도 그렇다고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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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를 덧붙이자면.... 사실 이 글은 아주 오래전에 써두고 서랍장에 넣어두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내 글방에 들러 꺼내 읽어보고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저장"에 도로 넣었다고 굳게(!) 믿었었는데... 다음날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라이킷이 무려 11개나 달린 것을 확인하고 내 눈을 의심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장' 대신 계획하지도 않은 '발행'을 누른 또 다른(!!!)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정말 나의 덜렁댐은 어디까지 갈 셈인지 참..ㅎㅎㅎㅎㅎ 그저 웃자!)


다시 삭제할까 망설이다가 이 남루한 글에 처음으로 하트 남겨주신 그 열한 분의 친절 때문에 억만년만에 다시 글을 써보는 열심을 내보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온정이 나에게는 다시 꿈틀대볼 수 있는 격려로 남겨졌다는 것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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