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직후 집과 가까운 산후조리원에 갔다. ‘우리는 새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조리원이에요!’라고 선전하듯 곳곳마다 아기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러던 중 액자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태어난 지 백일 된 남자아이의 흑백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기는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았다. 이런 사진은 어째서 남아들만 찍는(찍히는) 걸까. 지금 이 아이는 몇 살이 되었을까. 아무리 아기이지만,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맨몸 사진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어도 괜찮은가?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켜 ‘아기 백일사진’을 검색해봤다. 스튜디오들은 아기들의 맨몸 사진을 흔히 취급하고 있었고, ‘잘 찍은 샘플’로 의자에 앉아 소변을 보고 있는 사진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사진 속 당사자라면 어떨까?
▲ 포털사이트에는 모자이크 없이 맨 몸이 드러나거나 소변을 보는 순간을 포착한 아기들의 사진이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 기억하고 싶은 사진일까?
‘셰어런팅’, ‘랜선 이모(삼촌)’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육아에 대한 정보와 일상을 온라인을 통해 주고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기록하고 SNS 등의 매체를 통해 육아의 소중한 순간을 공유한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은 괜찮지만, 좋고 싫음을 표현하기 어려운 영유아의 경우, 부모가 아이들의 초상권 활용에 대한 권한을 갖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얼굴을 포함한 신체가 함부로 촬영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유아기 아동은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고, 보통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사진이 게재된다. 순수한 목적으로 업로드한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악용될 소지가 있으며, 부모는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최일선 보호자다. 디지털 아동권리를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수칙을 소개한다.
• 사진을 온․오프라인 공간에 게재할 땐, 아이가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낄만한 사진인지 한 번 더 생각한다.
• 사는 곳, 어린이집, 자주 가는 가게의 상호명 등 아이의 주된 동선이나 개인정보를 특정할만한 정보가 드러나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거나 부모의 통제권을 벗어나 전파될 소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 자녀의 사진이 활용될 땐 게재 기한과 구체적인 채널, 채널 속성에 대해 확인하고, 자녀의 의사를 확인한다.
캐나다에선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열세 살 아이가 부모에게 3억 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당장은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메일 주소 한 줄만으로 모든 과거가 추적되는 시대에 부모로 인해 공개된 아이의 정보들이 결혼, 구직 등 미래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다. 아동권리 감수성의 기준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상향시켜 자녀의 사진을 부모가 마음대로 게재할 수 없도록 법 제정을 추진 중인 나라들도 있다(경향신문 2019. 2. 6 기사 “내 아이 사진 올리는데 뭐 어때? 초상권, 해외선 다르다” 중)
디지털 시대의 부모는 그래서 더욱 현명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말아야 해’라는 말을 아이에게 하기 전에, 부모인 나 자신부터 점검하자. 안전한 집 안에 머물러 있어도 스마트폰,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 착취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세상이다. 무심코 업로드한 아이의 사진이 딥페이크 등 사이버폭력, 실종유괴와 같은 범죄에 악용되는 상황을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내 손으로 우리 아이의 안전을 벌거벗긴 일이 없는지, 나부터 점검해 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