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꾸 없는 마라톤인데 좀 기어가면 어때요
휴직 중 회사 선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잘 지내? 많이 힘들지? 출산하고 100일은 그냥 ‘미친년’이라고 생각해.
동굴 속에서 지내는 기분일 거야. 건강하고, 사무실에서 보자!
9년 차 육아 선배의 말엔 곱씹을수록 연륜이 담겨있었다. 호르몬 탓인지 감정도 그 무엇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을 포기함은 물론, 집 밖을 나설 당연한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삶….
그 무렵 나는 떡이 질대로 진 머리로 낮이고 밤이고 아이를 안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참새, 비둘기와 같은 날짐승을 진심으로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직장생활이 힘들면? 때려치우면 그만이다. 이직이라는 옵션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되길 택했다면? 돌이킬 수 없다. ‘뒤로 가기’ 버튼도 치트키도 없다.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마다 ‘부모란 제 한 몸 갈아 넣어 자손을 키워내고 지구상에서 소멸해버리면 그만인 존재일까’하는 슬픈 의구심마저 든다. 학교는 물론 책, TV에서도 육아의 민낯을 제대로 일러준 적 없다. 누굴 붙잡고 억울하다고 호소할 수도 없는 내가 선택한 내 삶이다.
누구나 완벽한 부모가 되기를 꿈꾼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완벽함을 ‘도도하게’ 고수하기엔 육아라는 과정은 인간의 밑바닥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불완전함’에 직면해야 한다. 자녀와의 삶은 하루 이틀 달리면 완주할 수 있는 레이스가 아니다. 더군다나 경제적 자립이 늦어지는 요즘, 양육은 30년 이상의 긴 호흡이 필요한 장거리 마라톤이 되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아무리 뿌리치려 한들 바뀌는 것은 없다. 힘들면 바닥에 드러누워도 좋다. 기다시피 걷는 것도 걷는 것이다. 뛰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완주하겠지!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가냘픈 존재에 대한 책임감, 그 책임감으로 나는 어떻게든 부모로 살기로 했다. 넘쳐흐르는 모성애나 부성애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모성애, 부성애가 출산과 동시에 ‘자동 생성’되는 것이라면 친부모에 의해 학대당하는 아이는 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부모됨은 노력과 인내의 연속이다.
자녀는 분명, 전에 경험한 적 없는 기쁨을 선사한다. 나를 꼭 닮은 존재의 행복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육아라는 여정은 초행길치고 난이도가 꽤 사악하다.
우리에게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숨찰 때 격려해주고, 주저앉은 순간 손 내밀어줄 존재. “힘들 땐 좀 쉬었다 가도 돼. 너도 한계가 있는 인간일 뿐이야.”라고 말해줄 존재 말이다. 완전한 육아는 ‘완벽한 부모’라는 허상을 버리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
[ 초록우산이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
1. 나는 어떤 이유로 부모가 되었나요?
2. 내가 지향하는 부모의 모습은 어떠했나요(어떠한가요)?
3. 자녀에게 나는 현재 어떤 부모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