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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 가족 Apr 20. 2022

나이듦의 정의

 나이듦이란 무엇일까.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에 의해 물리적으로 먹어가는 나이 말고도, 연령에 대한 구분값은 많이 있다. 신체적 나이, 사회적 나이, 정서적 나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나이... '저 사람은 나이에 비해 생각이 젊어', '여전히 건재하시네요', '나이가 어린데 생각이 깊구나'. 이런 말들은 상대방의 주민등록상 연령을 기준값으로 하는 말들이다.


출처는 온라인 짤


 확실히 요즘은 나이로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와 또래이거나 나보다 훨씬 젊은 분들이 '기업의 대표'라며 소개하기도 하고, 도전정신과 꿈으로 인생 2막, 3막을 열어가는 60세 이상의 모델과 유튜버들의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신선하게 조명하는 사회 역시 고정관념의 단면이다.


 나이를 묻는 것이 실례가 되는 세상이다. 순수한 의도에서 물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회의 서열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사실 굳이 나이를 물을 필요도 없는데 우리가 그동안 불필요하게 많이 따져왔던 것이 아닐까. 존댓말이 없는 언어(ex. 영어)나 여덟 살과 여든 살 사이도 그저 '프렌드(friend)' 한 마디로 정리되는 문화가 가끔은 부럽다.


 아이 입장에서도 생각할 볼만한 지점들이 있다. '요린이(요리+어린이)', '헬린이(헬스+어린이)' 등 무언가에 초보이거나 서툰 사람을 의미할 때, 우리는 '어린이'라는 단어를 이용한다. "그냥 말이 그렇다 뿐이지 뭘 그렇게", "혹시 진지충이세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꽤 억울할 수 있는 문제다. 매일 보도되는 TV 뉴스만 보더라도 나이값 못하는 어른들은 또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나이의 정의에 대하여 얘기하니 알고 지내던 직원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나이요? 요즘 그런 게 어딨어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배우기를 거부하는 순간부터 늙는 거예요.”


 이렇게 명쾌한 정의가 있나 싶을만큼 나는 감화되었다. 새로운 기계가 집에 도착하면 직접 설치해볼 생각보다 배우자에게 미뤄왔던 나를 반성한다. '언박싱'의 기쁨을 양도한 것이라고 변명해보지만 사실은 귀찮았을 뿐이다. 배우자는 여전히 젊고 나는 늙고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니 무엇이든 배우지 않으면 두배 세배는 더 나이 먹는 세상이 됐다.


 나이의 개념을 다시 세우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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