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2학년 때 잘못 했던 것을 가지고 와서‘너 원래부터 그런 애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십니다.
저 정말 말썽꾸러기 아니고요. SNS, 게임, 유튜브도 안 해요. 그런데도 화를 내세요.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해야지 엄마가 그만 하실까요?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연 속 부모-자녀 관계는 무엇이 문제일까?
‘숨이 막힌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김주영 선생이 떠오른다’, ‘너무 과도하게 참견하는 것 같다’ 등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자신하는 엄마가 사실은 내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상황인 거다. 아이는 답답한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어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고민을 터놓아야만 했다.
사연 속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녀의 한계를 부모가 설정하는 태도’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자녀의 성취를 적극 돕고자 하는 마음은 매우 크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부모인 나만이 옳다’는 태도가 아이의 가능성을 옥죄고 있다.
▲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초록우산 미래세대 부모교육 중)
어떤 과업이 주어졌을 때 할 수 있고 없고는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갓 태어난 아기도 기고, 서고, 달리는 과정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시작한다. 넘어지고 엎어져도 그 과정을 통해 배운다. 6세 아이에게 줄넘기 쌩쌩이를 10개 해보라고 한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과업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는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것이 있다. 쌩쌩이에는 실패했지만, 줄넘기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줄을 한 번 넘어서 본 것만으로 큰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다소 유난스러운 성격이었다. 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방영 중이던 청소년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은데, 혹시 오디션에서 낙방할까 두려워 집에도 함구한 채 1시간 거리의 여의도까지 지하철을 타고 홀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그리고 운 좋게 합격했다!
하지만 현실은?TV에서 보던 것과는 180도달랐다. 강원도 홍천 한 폐교에 조성된 촬영장에서의 2박 3일은 ‘개고생’의 기억뿐이다. 폭설이 내려 허리춤까지 쌓인 눈밭 가운데서 스텝들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찍고 또 찍었다. 벌겋게 된 손발에는 감각이 없었다. 큐사인이 들어가는 순간마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달려가고 싶을 만큼 후회가 막심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에 열정을 갖고 도전해본 행위 그 자체만으로 평생을 잊지 못할 값진 경험이 되었다.
누군가의 조종에 의하여 움직이는 존재를 우리는 ‘Puppet(꼭두각시 인형)’이라고 한다. 아이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키울 것인가? 아이는 엄연히 부모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다. 나와 외모는 닮았을지언정 성격, 취향, 기질 등 모든 것들이 다르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주어진 문제를 독립적으로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하철 6호선에서 만난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사연 속 어머니를 만난다면 아래의 시를 건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