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진지 사이
좋은 어른이 되기란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 좋은 어른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좋은 인공지능이 만들어지기 위한 것도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우선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를 말하기 전에 어른이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봤다.
사전에서 찾아본 어른의 어원은 혼인을 한 사람을 말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경륜이 있는 나이 든 사람에 가깝지 않나 싶다. 더 높임 말로는 '어르신'도 있고... 농경사회에서는 경험과 지식을 쌓는 방법이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보니, 젊은이에 비해 어른이 더 좋은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이나 조직의 어른은 어떠한 문제나 이슈에 대해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존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리라.
이 부분을 인공지능이라는 관점으로도 변환해 보면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 결과를 인간에게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옛날 마을의 어른과 같은 역할 또는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더 유사한 부분을 보자면 좋은 지식과 경험이 훌륭한 결과물을 내어준다는 것이다.
한때 인공지능 4대 천왕이라고 불렸던 석학 중에서 스탠퍼드 대학의 '앤드류 응(Andrew Ng)'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의 연구 중 유명한 내용이 '양질의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좋은 결과물을 만든다'라는 것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라 할지라도 입력된 데이터가 저품질이라면 그 결과물이 좋기는 힘들다는 부분을 연구논문으로 밝힌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용인데, 히틀러나 스탈린의 사고방식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예수나 부처와 같은 조언을 해줄리는 만무한 것이다. 예로 자율주행 프로그램이 난폭운전을 토대로 학습했다면, 그 프로그램을 탑재한 차량은 난폭운전을 일삼을 것이다.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삶을 살면서 좋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사람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기회는 갖추어진 환경 또는 보유한 경제력의 차이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환경과 경제력에 의해 쌓은 지식과 경험이 좋은 어른을 만든다라는 것은 100%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례들은 뉴스나 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볼 수 있는데, 분명 좋은 환경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후의 행보라던가 언행을 보면 이건 영 아닌데 싶은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배운 지식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해 내었는가, 그것을 어떤 경험으로 전환해내었는가에서 다른 요소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도적이든 환경적이든 어떠한 제한적인 틀에 갇힌 환경 안에 있는 사람이 배운 지식을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경쟁이라는 이기적 관점의 선택을 강요받는다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용되는 사고를 강요받는 이상, 항상 상대와 비교하고 경쟁하여 이기는 삶 그리고 그 리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삶만이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반면, 살면서 나쁜 상황과 배경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내었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도 있겠고 말이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현실의 상황에서 배움이 좋았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레벨업을 하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나,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성이라는 부분에서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양쪽의 극단적인 예시를 들었기에, 앞서의 사례는 나쁘고 뒤의 사례는 좋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어떤 환경에서 좋은 어른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어 어떤 입력값과 비교값을 주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좌우하는 것이 1차적으로는 가정과 부모의 역할일 것이며, 2차적으로는 사회가 제공해 주는 제도와 지원 그리고 보호장치가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달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요소 중 하나인 좋은 지식,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은 더 이상 시간의 문제도 아니고, 지식의 접근 제한성이 있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성장과정에서 과도한 지식이 입력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될 정도라고 할까. 그렇기에 사람이 성장하면서 제한된 시간 내에 형성되는 뇌의 사고와 판단능력을 만들어갈 시간에 대량의 지식을 밀어 넣는데 집중하기보다는, 대량은 아닐지라도 양질의 지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사고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육성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육성의 과정이 대치동 학원에서 가르치는 방식의 교육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AGI(Artificial General Intellegence)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구현이 임박한 현실에서, 우리는 후대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시점이 이미 지나고 있다. 물론 기초학습역량은 아무리 AI가 사람보다 더 잘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테크니컬한 풀이와 정답 찾기 중심의 교육으로는 다가오는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특히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말이다.
인간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묻고, 사고하고, 이해하며 실천하는 과정을 거쳐 경험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가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 있어 앞서 말한 좋은 어른이 되도록 성장시키는 일은 사회가 모두 책임을 지고 만들어 줘야 하는 과제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경쟁과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버려두었던 교육들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그 버려졌던 것들은 문학, 윤리, 역사, 철학 그리고 예술이다.
과거 이 교육들이 버려진 이유는 각각의 과정에서 편협한 정보를 외우고 과목 내에서 응용하는 것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돌이켜보면 이 과정들은 각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닌 연결성이 있는 과정이며, 단편이 아닌 상호 인과관계와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 속에서 역사의 판단과 결과를 이해하고 현재를 인지하며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대응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과정들은 각각으로의 객체가 아닌, 연결된 과정으로 발전되어야 하고 이것을 위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과목들이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공론화, 사회적 합의, 제도의 변경 등 난제가 많겠지만, AI가 인간보다 우수한 지식과 결과물을 내는 시대에 인간이 더 나은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테크니컬한 정답 찾기만으로는 한계가 올 것이고, 인간 본연의 존재로써 AI와 경쟁이 아닌 병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전히 경쟁과 효율을 우선으로 하는 현재의 어른들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함과 차이를 이해하고, 디지털이 아닌 현실의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작은 변화라도 주는 것이 현재 어른들의 역할이겠다.
우리 다수는 인간성이 상실되지 않고, 윤리적인 방식이 토대가 된 좋은 어른, 좋은 AI의 시대가 되기를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