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진지 사이
미리 얘기하자면 많이 진지한 글입죠. 스스로의 기록일 수도 있구요.
요즘 로마시대 관련한 책들을 읽고 있다.
그 시작은 로봇과 AI시대에 대한 사회변화에 대한 예측을 다룬 책인 '로봇시대 살아남기'라는 책으로부터였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로마역사는 사실 현대사회의 거울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줄 수 있는 반면교사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것이 로마시대,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어, 몇몇 책들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뭐, 너무나도 유명한 역사를 중년이 된 이제서야 보게 되는구나 하게 되지만, 반대로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현실 사회의 이슈와 미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 보니,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데 그중에서, '빵과 서커스'도 나의 관심을 끄는 단어 중 하나였다. 여기에서 '빵'으로 대표되는 것은 로마 시대 중 공화제 시대였던 기원전 123년 호민관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만든 '소맥법'에서 비롯된 사회복지 정책을 칭하는 말이다.
이 법은 식량 무료 배부라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매년 수확되는 일정량의 밀을 정부가 사들여 시가의 절반으로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팔도록 규정한 법률인데, 이 법은 폐지되었다 부활되는 등의 부침은 있었지만, 카이사르 때 무상 배부를 한 이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정착되어, AD400년대까지 지속된 법이라고 한다. 17세 이상의 '수도 거주 로마시민권 소유자'를 대상으로 매달 한 사람당 약 32킬로그램의 밀을 무상배급했다고 하니, 과장하자면 로마에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제도는 서서히 지방 도시 및 속주까지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커스는 모두들 알다시피 로마시대의 각종 축제(검투경기, 연극, 음악회 등)를 통한 시민들에게 제공한 유흥을 말한다. 이것 역시 앞서의 '밀 수급 증명서'가 무료입장권 역할을 해서 연계된 무상서비스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빵과 서커스'는 로마제국의 여러 이슈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보니 대중은 자립 없는 의존을 양산하게 되었고, 사회 체제의 내적 피로를 가속시키기도 했다.
2000년이 지난 현대의 우리 사회는 일자리 문제라는 큰 이슈에 직면해 있다. 특히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이 그 문제를 가속시킬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다시금 '빵과 서커스'라는 말 앞에 서 있다. 특히, '빵' 말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 사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제, 이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줄 것인가, 무기력을 줄 것인가? 그리고, 국가는 과연 이것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말이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는 수없이 있어왔고,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일부에서는 이 제도를 좌우의 관점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소득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닌 노령연금과 같은 종류의 복지제도라는 것이며, 정치싸움의 소재가 아닌 우리 모두가 또는 다음 세대가 맞닥뜨릴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지금 진지하게 준비를 생각해야 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로마역사를 교훈삼아 기본소득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써보는 글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참여형 기본소득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은 일부 국가와 단체에서 실험한 결과, 심리적 안정, 창의성 회복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동시에 근로의욕 저하, 사회참여의 약화, 재정에 따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되었다. 이는 로마의 복지정책이 보여준 문제와 닮아 있다. 즉, ‘무조건 지급’이 시민을 수동화시키는 등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만들어진 대안인 '참여형 기본소득' 또는 '사회참여소득'은 1996년 경제학자인 앤서니 앳킨슨(Anthony Atkinson)에 의해 기본소득의 한계를 보완하고, 정치적으로 보다 실현가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제안된 제도*다. 이 제도는 사회활동에 대한 ‘참여’를 조건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복지제도로 여기에서 참여는 임금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더 넓은 개념인 ‘사회공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시 여러 단체에서 검토한 바 있으며,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검토된 바가 있는 제도다.
*출처) 1996, Anthony Atkison, Participation Income
관련 논문이나 문서에서도 많은 검토가 이루어졌겠으나, 내가 정리해보고 보완해 본 방식은 이렇다.
18세 이하와 70세 이상의 노동인구에서 제외된 계층과 장애요인 등 다양한 사유에 의해 노동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계층에게는 연령, 사유 등에 차등하여 조건 없이 지원형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19세부터 69세 노동인구에 포함되면서, 세대 기준 미취업 상태인 노동활동이 가능한 계층을 대상으로 일정 수준의 사회적 참여(예: 복지센터 보조, 지역 봉사, 환경미화 등)를 통해 포인트를 적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 기여의 정도에 따라 생계형(Stage 1)에서 기여보상형(Stage 2)으로 확대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이는 기존 빵과 서커스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인 근로의욕 저하, 사회참여 기피를 어느 정도 해소하여, 자기 효능감, 공동체 소속감, 기회 형평성을 함께 증진시킬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노동활동이 가능한 시민은 수급자가 아닌 참여자로의 전환을 꾀함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수급 대상'이 아닌 공동체를 이루는 주체로 변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인구에서 제외된 사람들과 노동이 어려운 사정이 있는 기본소득 방식을 유지하고 말이다.
다시 로마시대로 가보자. 로마시대에는 넓은 제국의 영토와 구성원에 대해 파악하고 차등실행하는 등의 행정력을 구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이 모두 해야 했던 시대니까...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복잡한 조건을 실행시켜 줄 수 있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기에 좀 더 현실성 있는 방식과 제도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 제도를 감당해나갈 것인가를 보자. 재원에 대해서는 로봇세, 탄소세 등이 추가로 있어야 하겠고, 소득에 따른 세금을 제대로 거둬들이되, 탈세를 원천방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예산 중에서 쓸데없이 새는 것을 찾아내어 막는 등 효과적인 예산사용이 되어야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서 DOGE라는 정부효율부처를 통해 실현하려다가 흐지부지된 듯하지만, 인공지능 시대라서 개념적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을테고 말이다. (나라에 돈이 없는게 아니라 도둑이 많다는 말, 매우 공감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물론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은 자명하나, 점진적 도입 등의 논의는 필요하다.
(25년 기준 대한민국 예산이 677조에 복지예산은 125조 편성으로 18.5%다. 단순 계산으로 1500만명에게 월 60만원씩 지급하면 약 110조가 드니, 계산이 쉽지는 않긴하다)
그럼에도 전에 쓴 'AI시대 양극화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과 '저출산이라는 시대의 흐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구가 대폭 감소할 것이며, 이러한 환경에서 사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제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제도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로마역사가 보여준 교훈을 통해, 발전된 시민사회로의 진화를 위해 공론의 장에서 모두 같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