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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몰락에서 본 우리의 현실과 선택

사색과 진지 사이

by 오영

서구 문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은 찬란한 문화와 시스템을 갖췄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락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원인은 단순한 외부 침입이 아니라 내부 구조의 붕괴로부터였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로마제국의 내부 구조는 이후 발생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방아쇠가 된 외부요인을 막아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결국 몰락이라는 결과를 갖고 왔다는 것이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뽑는 공통적인 요인, 그것은 아래와 같다.


첫째, 통치체계의 불안정이다. 공화정 시대를 거친 후, 오현제(五賢帝)의 시대라고 일컬어졌던 찬란한 로마제국은 능력중심으로 후계자를 뽑던 체계에서 세습이라는 실패를 거쳐 누구나 힘을 가진 권력자들이 황제자리를 차지하는 등 정치적 무질서와 그로 인한 행정력의 부재가 있었다.


둘째, 극심한 빈부격차다. 기득권자들의 대토지 소유와 소득이 없는 중산층 몰락, 세금 불균형으로 인해 사회 해체의 조짐을 갖고 온 것이다.


셋째, 사회 시스템의 붕괴다. 로마는 2000년 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시스템의 국가라고 할 정도로 잘 갖춰진 사회, 군사, 국가운영 시스템을 갖고 있었으나, 앞서 말한 통치체계의 불안정은 기반시스템을 붕괴시켰고 그로 인해 군사력의 약화, 시민의식의 저하, 그리고 국가의 운영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로마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달한 문명이 자정능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보편적 위기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도 뚜렷이 목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인류가 만들어낸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결합체였다고 생각되나, 21세기에 들어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이 할 수 있다.


포퓰리즘, 극단 정치의 부상, 국가의 특정 권력을 이용한 파시즘적 지배체계라는 정치적 극단화, 자산의 집중, 중산층 붕괴, 플랫폼 노동의 확산이라는 경제적 양극화, 복지 시스템의 붕괴조짐, 공공영역의 민영화 추진, 관료화된 운영체계로 나타나는 국가 기능의 약화다.


이러한 요인들이 내부 자정 없이 방치될 경우, 두 가지 전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파시즘적 권위주의의 부활, 다른 하나는 엘리트 계층 또는 초국가적 기업 중심의 통제사회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2025년을 사는 우리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현시대의 로마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트럼프의 미국, 발전된 기술 중심으로 이미 파시즘적 권력이 국민을 통제하는 중국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 러시아, 일본(개인적으로는 일본도 사실상 유사 파시즘 국가라고 본다)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우리 대한민국의 밀접한 주변 국가들이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였던) 디지털 인프라, 교육 수준, 정치민주화 경험을 보유한 국가이나, 안타깝게도 다음과 같은 현실 또한 병존한다.


청년세대의 계층 이동 좌절 : 부동산 자산 집중과 노동 유연화로 인해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일부 기득권과 기업들에 의한 자본과 여론의 독점화 : 제조/소비/유통/콘텐츠 등에 아우르는 구조로 확장과 여론의 형성까지 가능해졌다.


정치의 이념화 또는 무관심 : 실질적 민생 해결보다는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념 대립구도, 단기적 효과에 매몰된 정치 그리고 그로 인한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화되고 있다.


공공복지의 불안정화 : 사교육 집중에 따른 공공교육의 약화, 세대 간 연금갈등, 의료갈등의 도화선, 그리고 이로 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위의 모든 것에 의한 결과인 국가 운영 시스템의 약화 : 비전과 전략이 없는 정치, 불명확한 기준, 사라진 공정성, 그에 따른 행정력의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불안한 구조가 내재된 전환기에서, 한국 사회는 다음과 같은 두 갈림길에 서 있는데, 하나는 기술*이 효율과 편의의 이름으로 기득권에 의한 통제수단이 되고, 시민이 사용자로 전락하면서 사실상 심화된 양극화의 테크노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기술*을 활용하되, 시민 참여와 윤리 중심으로 설계된 민주적 통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민주주의로의 진화이다. 이는 특정 기득권이 권력을 주도하고, 이것을 통제된 언론을 통해 위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한데, 이것으로의 진화도 정치, 경제의 양극화라는 길을 완전히 피할 수 없겠지만, 그 속도를 늦추거나 완화를 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각종 플랫폼 중심의 이미 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과 인공지능을 포함한다.


물론 민주사회는 선택의 자유가 있으므로 일부가 택할(아마도 그렇게 될 줄 모르고 택할 수도 있다) 테크노파시즘으로의 길도 있겠으나, 나는 이 길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자본주의의 주요 구성요소인 국가, 기업, 시민, 세 주체의 역할이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국가는 공공성과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조정자로 서되, 권력을 남용하지 않아야하며, 구체적인 국가의 긍정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이윤 추구 집단이 아닌,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자각해야 하며, 사용자 권리와 공정성을 중심으로 기업윤리, 기술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이것에는 앞선 다른 글에서 언급한 인공지능세 등의 집행을 위한 내용도 포함한다.

셋째, 시민은 더 이상 왕정국가 시대의 농노이거나 기술의 단순 사용자가 아니라, 주인이자, 감시자이며, 참여자여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 참여, 부정의 감시, 개선의 주체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요, 기술 중심에 선 국가다. 그러나 동시에 자산의 양극화, 세대 간의 갈등, 무의미한 극단적 이념싸움으로 얼룩진 내부 현실에 있으며, 예측불가 수준의 외부 변화로 정치, 경제를 포함한 국가 발전의 후퇴 등 위기의 징후 또한 명확히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더 나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짧지만 찬란했다가 힘이 없어진 파시즘적 사회였던 국가로 기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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