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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도시농부의 깨달음

일상과 사색

by 오영

나는 방구석 도시농부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은 수경재배, 스마트팜과 같은 단어들을 많이들 들어봤을 텐데, 나의 많고도 깊지 않은 취미 중 하나에 수경재배도 포함된다.


수경재배를 하게 된 계기는 어느 회사에서 나온 수경재배 가전제품을 접한 후였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 보니 사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서 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3년 전 즈음 잠깐 시작했다가, 우리 집 냥이씨인 나무를 데리고 오면서 잠시 접어두었었던 취미다. 그러다가 나무가 수경재배기기를 크게 건드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든 후, 올해 새로운 장비로 다시 시작했다. 물론 규모 있게 하는 것은 아닌, 방구석 한편에서 키우는 수준으로 말이다.

3년 전의 자작 수경재배기

목표는 엽채류, 즉 상추와 같은 작물을 쉽게 키울 수 있으면서 식사 때마다 뽑아먹을 수 있게 하자였는데 ,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투자대비 효과랄까, 그런 것은 별로 없는 재미반, 효과반의 취미 되시겠다.


작은 수경재배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신경 쓸 구석이 별로 없어서 주말에 물을 갈아준다던가, 녹조를 제거해 준다던가 하는 활동만 하는지라, 농부라고 하긴 뭐 하지만 어쨌든 방구석 도시농부 생활을 겸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기 마련이다.


먼저, 엽채류의 수경재배는 일련의 패턴화 된 방식으로 키울 수 있음에도 특정 LOT*는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수경재배 공부를 게을리해서이겠지만, "어? 왜 안 자라지?" 내지 "어? 갑자기 녹조가 왜 심해지지?"와 같은 의문들이 생기면서 농사라는 것이 꽤 어려운 일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LOT : 동일 원료, 공정으로 1회 생산되는 특정 제품의 단위를 말하는 제조업 용어


둘째로는 위와 반대로 한번 자라면 정말 쑥쑥 자라는데 "어? 이번엔 왜 잘 자라지?"를 떠나서 자연의 신비함에 대한 경외감이 든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든 물질이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 이론을 만들었었는데, 왜 그런 이론이 나왔을지 정말 쏙쏙 이해가 되면서 자연의 대단함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물론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는 어떤 원리로 식물들이 자라는지, 동물들이 자라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그냥 일반인인 방구석 도시농부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의 버전은 알리의 힘을 빌렸습니다

수경재배 시, 물론 물에 적정량의 영양액 (양액이라고 한다)을 넣어주긴 하지만 물과 빛, 바람만으로 자라는 상추들을 보자면,

"이야... 얘네들이 물만 먹고 이렇게까지 자라는 게 맞아?" 싶은 생각이 들기에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안 생길 수 없다. 상세한 원리가 밝혀진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마도 농업혁명 시대의 농부들 아니, 그 시대의 사람들은 더욱 그랬으리라.


물과 빛, 그리고 약간의 바람만으로도 생명이 자란다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때로는 덜자라고 때로는 잘 자라는 그런 것을 목격할 때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균형 속에 유지되는지를 깨우치는 것, 이것이 자연이 준 잘 자란 상추를 맛있게 먹는 방구석 도시농부의 작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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