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사색
비 온 후, 길을 걷다 보면 지렁이들이 인도에 나와 어딘가로 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들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발길이 오가는 곳에 느릿느릿 이동하는 지렁이들이 많이 위태로워 보인다. 피해서 걷기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걷다 보면 앞에 이미 밟혀 운명을 달리한 지렁이들이 보이기도 한다.
날이 좋은 때에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데, 회사의 자전거를 두는 곳 근처에 개미들의 주거지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출근한 것처럼 이 친구들도 아침에 출근을 했는지 분주하게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같이 출근한 처지에 혹여나 자전거 바퀴가 밟지는 않을까, 내 발이 밟지는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피해 가려고 노력하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 개미 P군은 밟혔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렁이나, 개미들을 미물(微物)이라고 부른다. 인간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월등히 뛰어난 존재라고 스스로에게 작위를 내리고, 이들을 하등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 보니, 어떤 이들은 미물의 생명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 일부 사람들은 벌레를 넘어 길냥이들과 같은 좀 더 큰 동물들에 대해서도 학대를 하거나, 죽이는 경우들도 있고, 이런 일들이 직간접적으로 목격되기도 한다. (우리 옆 아파트 단지에서도 안 좋게 죽은 길냥이가 있었다고 한다.) 애묘인으로써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들은 '미물이니까'라고 쉽게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만일 어쩌면 지성의 수준이 인간보다 월등히 높은 외계의 존재라던가, 신과 같은 존재가 있을 때, 그리고 그 존재가 인간이라는 종이 미물이라서 죽인다던가 멸종시키려고 한다면? 많은 SF영화의 소재처럼 말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
SF영화의 고전인 '지구가 멈추는 날'을 2008년 리메이크한 버전에서 지구를 살리기 위해 온 고등한 외계 존재인 클라투가 지구를 해롭게 하고 있는 인류를 멸종시키려 하자 여주인공 헬렌은 멸종을 멈춰달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린 바뀔 수 있어요. 변화를 멈추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영화에서야 헬렌의 외침을 받아들여 멸종시키려던 행위를 중단하고 해피엔딩으로 마치지만, 월등히 고등한 존재들에게 있어 한낱 미물인 인간이 하소연한다고 한들 들리기는 할까? 또 마음에 와닿을 수 있을까?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우리의 외침이 와닿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미물이라고 하는 개미나, 지렁이 또는 길 가다가 만나는 동물들에게도 기회를 줘보는 것은 어떨지... 생명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 그 삶을 그대로 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미물이라는 것은 상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개념인 데다, 미물이라 하더라도 같은 지구를 나눠 쓰고 있는 피차 비슷한 형편이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