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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가 AI시대에 질문하다

사색과 진지사이

by 오영

은하철도 999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어릴 적에는 메텔을 보기 위해 TV앞에 앉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은하철도 999를 봤을 때 메텔보다는 한 편 한 편에 담긴 이야기들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에 진정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냥 재미를 위해 쓰인 이야기가 아닌, 인간군상을 다룬 드라마요, 때론 철학서와 같았고, 때때로 생각이라는 화분에 계속 물과 거름을 주고 있기에 명작이라는 기억으로 남지 않았나 싶다.


TV판의 많은 에피소드들과 극장판을 봤었기에 모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나, 그중에서 유독 깊이 잔상이 남은 편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AI시대가 되면서 항상 생각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게으름뱅이의 도시"라는 에피소드다.


이야기는 이렇다. 999호가 내린 이 행성은 기계인간이나 로봇에 점령되지 않고,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서 먹고 쉬고 놀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모두 집을 가득 채울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뚱뚱해진 것이다.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 부부는 처음에 이 행성에 내려 개간을 하고 가꾸려고 했지만, 나라에서 보낸 로봇들이 모두 대신해주다 보니, 남편은 바로 의욕을 상실하고는 다른 이들과 같이 되었고, 아내는 다시 노력하는 삶을 찾기 위해 999호에 탑승해서 다른 별에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본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더라도 게을러지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는 내용이다.

AI시대가 되면,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이다. 디스토피아적인 예측으로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생겨, 일자리가 없이 피폐한 삶과 기본복지만으로 겨우 살아가는 그럼 삶이 될 것이고, 그나마 유토피아적인 예측으로는 전에 '빵과 서커스'라는 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먹고살만한 정도의 복지가 제공되면서 살아가는 삶이 될 것이다. 이상적인 형태의 시대가 되더라도, 인간은 일자리가 없게 될 것이고, 게을러지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할 수 있는 일도 없거나,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리고 디스토피아적이든, 유토피아적이든 유흥은 발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다가올 AI시대에서는 극소수의 일을 만들거나 일을 할 수 있는 계층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이 만화에 나온 삶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혹자는 앞으로의 삶이 위의 에피소드와 같다면, 이런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저런 삶이면 정말 꿀 아냐?"


좋게만 된다면야 꿀일 테지만, 꿀이라고 생각할 정도까지 될까? 궁금하다. 얼마 전 AI선도기업인 테슬라의 주주총회에서 회사 비전을 '지속가능한 풍요(Sustainable Abundance)'라고 선언했다. 사회가 지속가능한 풍요를 이루려면 기업이 가지게 될 이익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할 것인데, 한 두 기업만이 하는 것이 아닌 기업들의 보편적인 환원이 되지 않는 한,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그렁 비전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유토피아적으로 건강하게 살찌는 게 아닌, 불균형한 영양과 수동적 삶에 따른 디스토피아적 비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단지 육체적 결과에 대한 상상일 뿐이고, 정서적으로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만화에서 철이가 결심하듯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인지, 나 스스로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게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무려 45년 전에 방영되었던 은하철도 999의 이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그 질문에 대해 옳은 방향으로 향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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