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사색
늘상 그렇듯 저녁에 TV로 유튜브를 보다가 인상적인 문장을 봤다.
"필요를 구분하고 보통을 지킨다."
어떤 채널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좋은 문구라서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몇 번이고 마음에 곱씹어보곤 하고 있다. 이 문장 중에서 '보통을 지킨다.'라는 말은 쉬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왜 어색하게 들릴까 생각해 보니 요즘 '보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도, 자주 듣지도 않아서인 것 같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특별하지 않고 일반적인 상태, 흔히 볼 수 있고 흔히 일어나는 일, 평균적인 정도라고 나오는데, 실생활에서는 사회적, 심리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느끼는 흔한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것은 수학적인 중심을 이야기하는 평균, 중위값과는 다른 의미로 자기 자신의 판단에 의한 일반적이고 흔한 상태를 말하는 감각적, 주관적인 의미라고 한다.
다른 의미로 보통은 '적절함'이라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유교에서의 중용(中庸)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어에서는 Ordinary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 표현은 특별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닌 평범함의 보통이라는 의미로 우리말이 뜻하는 보통과는 조금 다르게 사용된다. 여담이지만 유명한 소설 중, 우리말로 '보통사람들 (Ordinary People)'이라고 번역된 소설이 있는데, 이 보통사람들은 과거 어떤 대통령이 말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의미인 셈이다.
아무튼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보통'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8, 90년대를 소년기/청년기로 보낸 중년의 아저씨에게는 보통이라는 것이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고, 내가 주변에서 볼 수 있던 친구들의 삶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그런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도시에서 살아서,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는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반면 요즘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이란 가공된 타인의 일상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타인의 삶이 SNS를 통해 노출이 되고, 공유되는 시대이고, TV 등의 방송매체에서는 리얼리티라고 포장된 삶들까지 일상이라고 하는 생활이 쉴 틈 없이 우리의 눈과 대뇌피질에 반강제로 주입되는 시대이다. 여기에 노출된 타인의 삶은 때로는 소비적이고, 우아하며, 여유가 넘쳐흐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관적, 감각적으로 평가되는 보통이라는 수준이 자연스럽게 보통 아닌 보통이 되어버린 셈이다.
또한 돈을 벌어도 남보다 더 벌어야 하고, 자식들도 옆집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그런 경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보통이란 경쟁에서 뒤처진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쟁세상에서의 보통은 타인이 하는 취미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고, 타인이 하는 소비 수준도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 되었다. 보통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일반적인 상태라고는 하나, 사회 전반적인 요구 수준에 비해 높아진 '특별한 보통'이 되어버린 셈이다.
특별한 보통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살면서 그 특별한 보통을 갖거나 지키기 위해서 희생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얻은 것과 남길 것은 무엇일까?
문득 나의 또는 우리의 좌표계가 때로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에는 GPS를 재설정하듯, 우리 인생의 기준값, 비교값을 확인해 보고, 보통이라는 것을 재확인해볼 필요도 있다. 그 방법은 SNS와 방송을 벗어나, 살고 있는 곳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녀 보는 것일 수도, 도시를 벗어나 시골을 여행해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딘가 전파의 소음이 없는 곳에서 한두 시간 자신의 일생 전반을 돌이켜본 후, 앞으로 살아갈 일생에 대해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필요를 구분하고 보통을 지킨다."
이 문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 또는 우리에게 욕망을 절제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삶, 균형을 지키는 삶, 공동체 속에서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삶, 그리고 비로소 꾸준한 일상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라고 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를 말이다.
덧붙임. 먹고 살만큼 살고 있으면서 알리에서 뭐 괜찮은 거 나왔나 하고 찾고 있는 나 스스로가 이런 글을 적자니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