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사색
몇 주 전 본가에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이 연로하시다 보니 본가에 다녀올 때면 간혹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날의 주인공은 아버지였다.
집과 본가의 거리가 있다 보니 오후에 도착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였다. 아버지는 경로당에 계시다가 집에 올라오셨고, 이제 식당으로 출발할 참이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하시는 거다.
방안을 찾아봐도, 전화를 걸어봐도 도통 집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기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내가 경로당에 있을까 싶어 내려갔고, 출발 시간이 되었기에 나는 차를 준비하기 위해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찾았는지 전화를 해보니 못 찾았다고...
이런 낭패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노인들은 특히 핸드폰이 없으면 더욱 난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식들이 본가에서 멀리 살 때면 더욱더 그렇다.
일단 집에 가 계시도록 한 후, 혹시나 싶어 내가 다시 경로당으로 향했고, 전화를 걸면서 가다 보니 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로당 옆에 있다) 너머에서 뭔가 전화벨소리 비슷한 게 들린다. 벨소리를 추적해 보니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화장실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화장실 선반 위에 핸드폰이 놓여있어서 찾았다는 희소식을 전하고는 저녁식사를 하러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핸드폰이 진동상태였다 거나, 벨소리가 작았다면 못 찾았겠다 싶은 하루였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1~2미터만 떨어져도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청력이 좋지 않으시다. 보청기를 사용하셔야 하는데, 그 나이대의 노인들 다수가 그렇듯 고집이 세고, 보청기에 적응을 못하셔서 보청기를 사놓고는 사용도 안 하신다. 그래서 핸드폰의 벨소리는 늘 크다. 벨소리가 크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동상태로 해놓았다가는 침대나 다른 곳에 두었을 때 전화가 왔는지도 모르기 십상이라 조용한 공공장소가 아닌 이상에야 상태는 늘 소리모드다.
그날의 에피소드를 겪은 아내 왈, 동네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이 왜 그리 진동을 하지 않고 벨소리로 해놓았는지 몰랐는데, 이해가 되더란다.
그렇다! 노인들에게는 노인들만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중년의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젊은 청년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이유말이다.
몸이 노쇠하고 기능이 떨어지다 보면 으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귀가 안 들리다 보면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소화력이 떨어지다 보니 먹는 것들이 제한되어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도 한정되기 마련이며, 관절이 좋지 않기에 좋은 곳에 가서도 오래 구경하기가 어려운, 기억력이 떨어지다 보니 자꾸 되묻게 되는, 노인이 되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그런 이유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나 자신의 사고의 중심으로 노인들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봤던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은 살아 있는 한 언젠가 겪게 될 일들이 될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더라도 누구나 그 혜택을 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비단 노인들만의 이유만 있지는 않을게다. 어딘가 몸이 불편하면 그로 인해 나타나는 어떤 행동양식이 생길 테고 그 행동도 역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 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그런 이유,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싶다.
중년이 되어서도 아직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모자란 나이인가 보다. 지금까지 내 중심의 생각을 해오던 것을 좀 더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내가 지금 아니라고 해서, 내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