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
몇 해전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한 동물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먼저 우리는 사파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긴 줄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어떤 동물들을 보게 될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승찬이는 여기서 어떤 동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지만, 아내와 나는 처음 와보는 터라 아이들의 궁금함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마침 안내를 해 주는 여직원이 있었고 궁금한 것은 저 누나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승찬이는 말이 끝나자 바로 여직원에게 달려갔다.
누나! 우리 차 타고 들어가면 어떤 동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요?
음.... 호랑이, 사자, 코끼리, 기린, 곰, 그리고 라마.
라바? (한참을 생각하더니) 애벌레?
우리 모두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승찬이는 웃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안내를 해주는 누나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네가 말한 라바는 만화에 나오는 레드와 옐로우 맞지?
네~.
여기서 만날 동물은 라마야. 라마!
아~ 라마!
그래, 라마는 저 멀리 남아메리카에서 왔는데, 낙타랑 비슷하게 생겼어.
아~~.
승찬이는 라마를 평소 집에서 보던 만화 속의 라바로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만약 승찬이가 이전에 라마라는 동물을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서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다면, 위와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경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나아가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의 주요 용어인 도식, 동화, 조절, 평형화가 떠올랐다. 도식(schema)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식, 절차, 관계 등을 말하는데, 승찬이에게는 라마에 관한 도식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승찬이는 라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을 수반한 인지 혼란이 초래된 것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식인 라바를 이용하여 애벌레를 떠올린 셈이다. 승찬이는 자신을 혼란케 하는 라마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라마를 보았을 때, “저게 라마구나”라며 작은 탄식을 질렀다. 바로 동화(assimilation)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피아제는 동화를 새로운 정보 혹은 경험을 접할 때, 그러한 정보와 경험을 이미 자신에게 구성되어 있는 도식에 적용시키려 하는 경향성이라고 개념화하였다. 승찬이는 라마를 보고 목이 길고 다리가 네 개이며 마치 낙타처럼 생긴 초식동물이라는 새로운 도식을 형성한 것이다. 그런데 목은 길지만 기린과는 다르고, 다리가 네 개지만 양이나 말과는 다르며, 낙타처럼 생겼지만 등에 혹이 없다는 차이점을 통해 라마와 다른 동물들을 구분하는 조절(accommodation)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승찬이는 라바와 라마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지적 평형을 찾게 되었다. 평형화(equilibrium)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개입으로 기존에 형성된 도식에 인지 갈등이 유발되었을 때, 균형을 찾기 위한 인지 과정이다. 갑자기 찾아온 인지 불균형 상태를 원래의 균형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조절과 동화가 필요하다. 조절과 동화의 개입으로 다시 인지적 균형 상태를 회복하고 이러한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도식이 확장되고 성장한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찾아온 인지 갈등 상황을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 줄 필요가 있다. 인지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도식 자체의 성장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풍성해지면서 세상에 한 궁금함이 증폭되는 시기에 다른 곳으로의 여행은 경험의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이 동반되는 경험은 아이들이 몸으로 체득하는 살아있는 학습 기회가 된다. 더불어, 온 가족이 같은 곳을 여행했다는 경험은 앨범 속의 사진처럼 과거의 행복을 추억하는 공감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