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중독이다

by Serendipity

중독(中毒)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마약 중독, 약물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 특정 사물이나 생각에 지나치게 빠지다 보니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 의미가 더욱 넓어져 특정 대상에 과몰입하거나 동일한 행동을 장기간 지속하는 상황으로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 하지 않으면 하고 싶고, 생각만으로 흥분되고, 결국 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중독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에 빠지기도 하며 한 사람이 가진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한 제한된 중독의 개념에서 벗어나 넓은 의미에서 바라보면 꼭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면에 숨겨진 장점도 존재한다. 달리기 중독이 그렇다.

달리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잘 활용하면 유익하나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패턴을 찾아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할 때 건강한 달리기가 되지만, 신체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달리기는 치명적일 수 있다. 8년 동안 달리기를 취미로 삼고 있는 한 유튜버가 그 효과와 유용성을 알리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영상 아래에 있는 한 안타까운 댓글을 보게 되었다. 유튜버를 따라 매일 10km를 무리해서 달리다가 결국 병원에 가게 되었다는 글이었다. 무릎 연골이 급격히 손상되어 달리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의욕만 앞세워 과도하게 달린 결과다. 8년 동안 달린 사람과 이제 갓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아마 무릎 부상을 입은 초보자는 그 유튜버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과도하게 달렸을 것이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는 조급함이 부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의욕이 앞섰다. 몸 상태가 좋은 날은 평소보다 더 달렸다. 달리기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자의 몸은 능력치를 벗어난 운동을 수용하지 않았다. 무리하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리 근육이 똘똘 뭉쳐 다음날 뛸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했다. 음식 섭취 후 포만감이 가시지 않은 채 달려 복통까지 유발했으니 얼마나 의욕이 앞섰는지 짐작된다. 나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반복으로 올바른 달리기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처음 한 달은 무조건 걸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걸으며 다리에 힘을 길렀다. 한 달 후에 비로소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좋은 날은 더 달리고 싶었지만, 스스로 자제했다. 힘이 남는다고 무리하면 다음 날 상태가 안 좋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음식이 맛있다고 과식하면 탈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음 날에도 운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한다. 적절한 자기 관리와 절제가 병행될 때 달리기는 효과성을 발휘한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지속할 수 있는 끈기. 이러한 끈기는 의지에서 나온다. 강한 의지야말로 집에 안주하려는 몸을 일으켜 달릴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또 다른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는 의지. 어제 뛰었으니 오늘 하루쯤 쉬기를 바라는 내부의 유혹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의지. 비록 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힘들지만, 실제로 달리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와서 뛰기 잘했다는 만족감이 내부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이러한 만족감은 내일 다시 달려야겠다는 의지를 만든다. 강한 의지로 달리고 나면 또 만족감이 찾아오고, 이 만족감은 의지를 더 높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달리기에 중독된다.

달리기에 중독되면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시간만 나면 달리려 한다. 시간이 나지 않으면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 상황을 바꾸기도 한다. 2019년 8월 말, 제주도에 업무차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법인 카드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영수증 챙기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인지한 순간은 이미 늦은 시간이라 다음날 가기로 하고 휴식을 취했다. 갑자기 숙소에서 식당까지 거리가 궁금해졌다. 지도 앱으로 찾아보니 편도 4.5km, 왕복 9km 거리. 달리기에 참 좋은 거리였다. 출장으로 인해 달리지도 못했는데, 제주도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릴 생각에 마음은 이미 설레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달리는데 필요한 옷과 운동화를 챙겨 왔으니 얼마나 의욕이 강했는지 엿볼 수 있다. 어쩌면 달릴 시간과 상황을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달려서 영수증을 받아왔다.

나는 달리기에 중독되었지만, 중독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달릴 때마다 항상 다짐하는 것이 있다. 절대 무리하지 않기. 뛰다 보면 힘이 솟는 날이 있다. 평소와 같은 거리를 달리고도 힘이 남아도는 때다. 그러나 내일 달릴 수 있는 힘을 남겨두기 위해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달리기 중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일. 중독의 늪에 빠지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달리기가 주는 유용함을 살리려 한다. 그래야 더 건강해지는 달리기, 삶의 활력이 되는 달리기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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