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안겨준 작은 변화

by Serendipity

달리기는 나의 생활 방식에도 작은 변화를 불러왔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달리기. 도착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일정한 속도로 한 시간 넘게 달리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하루의 묵은 떼를 날려 버릴 수 있어 머리도 상쾌해진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으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신기하게도 좋아진 기분은 행동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과 같이 집안일에 대한 일반적 인식의 범위를 넘어 가족과 구체적인 것을 함께하는 범위로 점점 확산되었다. 그중 하나가 아이들과 함께 공부도 시작한 것이다. 부모의 권위로 공부를 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공부를 함께 하게 되었다. 한국사 능력 검증시험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5학년인 아들은 1학기부터 사회 시간에 한국사를 배우고, 중학생인 딸도 2학년부터는 초등학교 때보다 심화된 역사를 배우기 때문에 교과와 관련된 내용도 배우고 한국사 시험에도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약 6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여 우리 모두 5급을 취득하였다. 지금은 3급 도전을 위해 아이들과 계속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

집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 맺어온 소중한 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생각. 굳이 다양한 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 자연스러운 관계의 흐름에 맡기되 만남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횟수와 시간이 줄었다는 말이다. 만남은 주로 이미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때 함께 지낸 사람들과 만나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또한, 지난 시절 함께 공유하고 있던 옛 추억을 꺼내어 서로가 강한 정으로 이어져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기도 한다.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소통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다. 이러한 만남에도 변화가 생겼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많은 관계는 뒤로 물러난 것이다. 가족을 중심에 두고 만남의 여지를 고려하였고, 달리기 시간 확보에 지장이 있으면 억지로 시간을 내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자신이 정한 삶의 가치 기준에 입각하여 취사선택하는 법이다.

새로운 만남으로 관계를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누군가와 만나고, 업무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향기 나는 꽃을 피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서로의 각이 달라 조화롭게 맞추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마디로 정체성이 확고한 두 인격체가 만나 순수한 관계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상대를 탐색하고, 실리에 도움이 될만한 요소가 있는지 판단하여 다음의 만남 여부를 결정짓는 정치적인 관계.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를 수단화하는 극단적인 경우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쉽게 목격하고 경험한다. 순수한 만남인 듯 거를듯하게 포장하지만 머릿속에는 손익 계산기를 빠르게 돌리는. 이제는 이러한 만남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먼저 내미는 의도적인 배려와 도움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 되기 때문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반대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 외부 만남은 줄어든다. 양자 간의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양팔 저울로 수평을 맞추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추구하는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가치에 의미를 두는 순간 삶의 방향은 기울어진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가족을 가치의 중심에 둔다면 집에 머물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할 것이고,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의미를 찾는다면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결국, 선택과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일정 부분 외부의 영향을 받겠지만, 전적으로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성찰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소홀히 했다는 생각. 나의 성취를 위해 가족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이기심. 이 생각에 이르자 박사 학위를 받겠다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학술적 연구 결과에 논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는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나한테 아내는 배려였지만, 아내한테 나는 야속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지금이라도 그 미안함으로 아이들을 위해, 아내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는 나를 집에 빨리 오도록 만들었고, 삶의 우선순위 또한 바꿔 놓았다. 이러한 변화가 싫지 않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의 참맛을 알게 되었더라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조금씩 더 좋은 아빠, 더 나은 남편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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