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목소리로 만난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감정을 담고 있어, 첫마디만 듣고서 전화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다양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에 내 마음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나마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전화는 업무 담당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덕분에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감사의 말까지 들으면 내 마음도 뿌듯해진다. 문제는 화가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다. 이미 분노의 마음을 키워 전화한 터라 자신이 어디의 누구인지 밝힐 이유도 없다. 오로지 감정에 따라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뿐이다. 그래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텔레비전 시청 중, 독서 캠페인을 보고 전화하였다는 한 민원인은 코로나 상황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등장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현재 텔레비전으로 송출되고 있는 독서 캠페인은 코로나가 전파되기 전에 촬영한 것이라고 해도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라는 속담처럼, 마치 다른 곳에서 쌓인 분노를 배설하기 위해 전화한 듯한 인상이다. 마음 같아선 똑같이 응대하고 싶지만, 최대한 경청하면서 이해하려 애쓴다.
목소리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 힘이 나는 격려의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불쾌한 말에 하던 일도 되지 않는 나락으로 빠지기도 한다. 불쾌감을 주는 민원인을 응대하고 나면 마음에 웅덩이가 하나 생기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웅덩이에는 오염수가 고여 계속 썩어가는 느낌이다. 고이지 않고 계속 순환해야 썩지 않고 자연 생태계와 같은 자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
이런 날은 꼭 달린다. 달리다 보면 마음에 생긴 웅덩이가 메워지는 느낌이다. 고여있던 오염수도 정화된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자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로지 달리기 그 자체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긍정적인 감정은 더 강렬해지고 좌절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희미해진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스트레스 요인도 잊게 된다. 몰입 경험 그 자체에 완전히 빠져들면서 주변 사람들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p.38)
과거에는 오염수로 가득한 마음속 웅덩이를 제거하기 위해 술에 과의존하기도 했다. 실제로 술의 일시적 망각 효과는 탁월하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나의 푸념까지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그 효과는 더욱 좋다. 그러나 꼭 이런 날은 과음으로 이어져 고주망태가 되었던 적이 많다. 중요한 것은 술에서 깨어나면 웅덩이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알코올로 인한 순간적 마비 현상이었던 셈이다. 기껏 작은 웅덩이 하나 때문에 몸을 혹사시킨 것을 생각하면 현명하지 못한 대처 방법이라 할만하다.
이제 나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을 찾았다. 달리기. 나에게 달리기는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성능 좋은 정수기와 같다. 몸에 쌓인 노폐물과 끈적한 지방을 태워버리고 마음에 안착하려는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을 날려버리니, 어찌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