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즐거운 고통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옮긴이는 위 문장을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에게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회피할 수도 있고 고통을 참으면서 극복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던 결국 본인이 결정할 문제임을 뜻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을 때, 휴식과 공부의 갈림길에서의 선택도 본인의 몫인 것처럼.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달리다 보면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다. 멈추고 싶은 유혹과 계속 달려보자는 의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순간이다. 달리기를 멈추면 순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완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고통을 이겨내며 계속 달린다면 완주의 기쁨과 함께 성취감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달려본 사람은 안다. 고통의 순간과 마주하였을 때 일어나는 이러한 내적 갈등을. 그리고 러너라면 고통을 극복해가며 결승점에 도달하였을 때, 고통조차 잊게 만든 희열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애나 렘키의 저서 「도파민네이션」은 적절한 고통이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예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쾌락 뒤엔 고통이 따르고 고통 뒤엔 희열이 온다는 것이다. 쾌락 뒤에 고통이 오는 경우를 술을 통해 살펴보자. 우리는 술을 마시는 순간,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과음하게 될 경우, 다음날 찾아오는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숙취로 인한 두통과 복통은 평범했던 일상생활조차 힘들게 만든다. 일시적 쾌락의 정도가 강한 마약은 더욱 큰 고통을 불러올 것이다. 반대로 고통 뒤에는 희열이 찾아온다. 알콜 중독자는 매일 술로 쾌락을 추구한다. 만약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그 자체가 고통이 되어 불안, 분노, 우울 등과 같은 부정적인 증상이 수반된다. 그런데 그가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마시고 싶은 고통을 이겨내며 알콜 중독을 극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아마 새로운 삶을 누리는 희열을 맛볼지도 모른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중독에서 벗어났다는 성취감은 자존감을 높여준다. 어렵게 극복한 알콜 중독의 늪에 다시는 빠지지 않기 위해 더욱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고통의 경험이 인간을 더 강한 존재로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동시에 인간은 삶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존재다.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고통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즉, 내가 가는 길에서 고통과의 만남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통은 기쁨, 슬픔, 행복, 우울, 분노 등과 같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쾌락의 대상을 하나하나 다 누리다가 고통의 블랙홀에 빠지게 되고, 내가 원하는 목표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의도치 않은 삶을 살지도 모른다. 니체의 말처럼, 고통이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면 고통을 즐기는 연습이 더 성장할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된다. 운동, 음악, 미술, 수행, 공부 등과 같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통한 고통 즐기기.
나는 달리기로 고통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