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케로 판단 유보하기
‘저 애는 왜 맨날 저런 모습만 보이지?’
‘공부와는 완전히 담쌓은 애구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네!’
아이를 내 기준으로만 규정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규정한 틀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랬다. 내가 모르는 이면의 것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는 노력도 없이 쉽게 판단해 버렸다. 심지어 동료교사의 말만 듣고 그대로 판단한 적도 있었다. 혹시라도 귀뜸해준 행동이 나타나면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라고 생각하며 낙인의 깊은 수렁으로 빠트려 버렸다.
수업 장면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한 날이면 모든 아이들이 내 수업에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환상 속에 갇혔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달랐다. 평소처럼 무기력한 아이, 딴청부리는 아이, 장난치는 아이는 언제나 존재했다. 그럴 때면, 내가 규정한 기대에 부합하지 않았던 아이들을 원망하며 꾸짖기까지 했다. 선생님이 이렇게 노력해서 준비했는데,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대한 감정을 아이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왜 그런 말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해 가능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 이혼까지 거론되며 엄마, 아빠가 싸우는 가정의 영향을 받은 아이 마음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이때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나무라면 그 아이는 이중적인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편견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저 사람은 나와 많이 다르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해 버린다. 심지어 자신이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조차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가 전해주는 말만 듣고 그 사람을 규정한다. 동굴의 우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집단화하여 편견의 두터운 벽을 쌓기도 한다. 혹여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면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하여 동굴에서 함께 서식이 가능한지 여부를 결정한다. ‘인간은 어차피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규정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후설(Husserl)은 ‘판단중지’를 뜻하는 ‘에포케(epoche)’라는 말로 편견에 빠지는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지금 보이는 장면과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괄호치기를 통해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자는 의도다.
그런데 우리 삶의 속도는 너무도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아이가 있다면 섣부른 판단을 유보해 보는 것이 어떨까? 코드가 맞지 않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에포케’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