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챙길까 말까. 이는 사진기자인 내가 여행 짐을 쌀 때마다 내려야 하는 가장 큰 결정 사항 중 하나다. 여행 기간 동안 찍고 싶은 그 순간이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그렇다. 그 순간은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무거운 카메라를 하루종일 들고 다니는데 찍고 싶은 게 하나도 안 보일 때가 있다. 포기하고 가볍게 여행을 떠나면 막상 그 아름다운 순간들이 연속해서 찾아오기도 한다 휴대폰으로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오지 않으면 나의 선택을 끊임없이 원망한다.
그런 내가 세 달 반의 안식기간 동안 DSLR 없이 한국, 말레이시아,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한 건 크나큰 결정이었다. 일할 때 쓰던 사진기를 가져가면 어딜 가든 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한 이야기를 취재 나가면, 인물 사진은 최소 150장, 있는 그대로를 찍는 다큐멘터리식 사진이면 300장 이상의 사진을 찍는다. 스포츠 경기를 찍을 때는 1000장 넘게 찍는 게 나와 동료 사진 기자들의 일상이다. 여러 구도로 대상의 행동과 표정을 담고 그중에서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진 5~8장을 추린다.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이 과정이 내 몸에 배어있다. 근무 외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앞에 보이는 걸 잘 담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생기고, 눈을 뜨고 보면 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안식기간만큼에는 좀 더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싶었다. 정 찍고 싶다면, 필름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도 충분하다고 자신을 설득했다. 필름카메라는 한 장을 인화하고 스캔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 진짜 찍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찍게 된다. 찍은 것을 바로 본 후 스스로 피드백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할 수도 없기에 더 적합했다. 휴대폰 카메라는 기술적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에 기대를 낮추고 순간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게 된다.
그렇게 거의 세 달의 휴식기간이 흘렀다. 예상외로 많은 사진을 찍고 있다. 내게 사진은 일이기에 앞서 내 주변을 관찰하며 탐구하고 소중한 순간,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의무감 없이 정말 찍고 싶은 것만 찍고 보니 친구, 가족, 흥미롭게 본 주변환경이 사진에 담겨있다.
사진을 보다 보면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이 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사진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제한되어 있다고 느낀다. 근래에 글, 영화, 음악, 그림을 더 즐기다 보니 그 한계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글은 사람마다 문체도 다르고 상상, 생각하는 것을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2차원적인 장면 외에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방향성과 깊이를 더할 수 있고, 관중이 몰입한 한 시간 이상의 시간, 음성, 음악 등을 혼합해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Musée d'Orsay)에서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점묘법, 보색을 사용해 장면을 다르게 표현한 것을 보며 그림에서도 표현의 요소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사진은 지금 내 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만 꽤나 사실적으로 2차원적으로 담는다.
사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나만의 사진을 찍을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안식기간에 그러고 있듯, 나는 어딜 가든 사진을 찍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진에 이용할 수 있는 요소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색채, 선, 포즈, 표정, 구도, 렌즈, 조명 등 테크닉 하면서 사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진에 접근한 방식과는 꽤나 다르다. 저널리즘에서는 사실을 변형하는 것을 비윤리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테크닉 한 부분보다는 지금은 내 강점이 된 사진 전의 단계 - 가령 이야기 찾기, 질문하기, 상대를 편안하게 하기, 공감하기 - 에 더 초점을 맞추어 왔다. 대상도 다큐멘터리 저널리즘으로 한정할 게 아니라, 애완동물, 인물 사진, 음악, 건축물, 음식처럼 내가 일하지 않을 때도 찍고 있던 것들로 확장시키기로 했다. 결국 내가 사랑하는 순간, 대상들을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찍고 싶으니, 탐구도 이들과 함께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떨어져 있을 때 더 사진을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