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이 안식기간을 갖기로 한 이유
대학생 시절, 좋아하던 교수님이 '안식년 (sabbattical)'을 갖는다고 했을 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한자로 따져보면, 편안'안'(安), 쉴'식'(息), 해'년'(年)으로, 말 그대로 편히 쉬어가는 해이다.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시기라고 들었다. 자신이 컨트롤하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근사하고 이상적인가. 나도 언젠가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이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 교수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서른한 살이 된 2023년 7월, 나 자신에게 최소 세 달 반의 안식기간을 주기로 결정했다.
우선, 너무 지쳐있었다. 스물세 살이 되기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국땅에서 네 번의 언론사 인턴십을 하고,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삼 년 동안 사진, 영상기자 일을 하고 있었다. 첫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코로나가 터졌고, 내가 언론사의 처음이자 하나뿐인 사진기자였다. 어느 순간, 'it feels challenging', 'it's difficult to'라고 많이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려움을 가볍게 여기고 묘한 해결책을 내는 게 아니라,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동시에 그렇게 말하는 내가 이해가 됐다. 잘하고 싶은 게 많은 나로서, 일을 너무 많이 벌려놓았다. 일에 대한 목표치가 높아, 계속 부족한 점이 보였다. 결혼을 했는데도 퇴근을 하면 더 나은 작품을 하기 위해 방에 문 닫고 앉아 또 다른 일을 하기 바빴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응원하면서도, 나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미안한말이지만,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자는 남편의 제안이 또 다른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삼십 대에 진입하고 결혼을 하자, 결정할 일이 많아졌다. 대학생일 때 삼십 대의 선배들을 만나면 나보다 훨씬 성숙하게 느껴지고 많이 아는 것 같았다. 나도 서른 살이 되면 저런 모습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 나도 타인의 눈에는 내 색깔이 명확하고 확신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른다. 친한 친구, 가족이 최근에 '너는 자기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아는 친구야', '언니는 뭘 해도 잘할 것 같아', '너 결혼식은 정말 너 다웠어. 얼굴을 가리고 결혼식 장면만 봐도 너 결혼식이라고 맞출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생겼다.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 걸까? 아이는 누가 길러야 할까? 아이는 어떻게 기르는 게 좋을까? 미국에 살 텐데, 한국말을 굳이 가르쳐야 할까?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게 좋을까? 아니라면 어떤 일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직장 동료가 되고, 더 좋은 친구가 될까? 이 질문들에는 1+1=2처럼 절대적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여러 조사를 하고 이야기를 접하며 나만의 답을 내리는데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가까워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일 말고도 해보고 싶은 게 많았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느꼈다. 중학교 때, 갈색 벽돌 건물에 있는 수많은 교실 중 하나에 앉아 운동장 너머로 걸어 다니는 어른들을 보면 무지 부러웠다. '저기 저 어른들은 세시 전에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있네. 나는 천장에 있는 선풍기가 회전할 때마다 축구하고 들어온 남자애들의 땀냄새를 맡으며 종이 칠 때까지 꼼짝 못 하고 앉아 있는데.' 빨리 학교에 묶여있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을 가고 나니, 자유로워진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은 많았지만 그 시간을 '즐거움'에 집중하며 쓰기가 힘들었다. 20대 내내 나는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자'라는 큰 목표에 내 일상을 최적화하며 살았다.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꾸 바쁘게 내 일상을 채웠다. 그때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여유가 마음에도, 통장에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내게 그런 여유는 없다. 하지만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어버릴 것 같았다. 쉬면서 인생, 커리어 방향을 틀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버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바로 새 일을 시작하면, 2주 이상의 휴가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첫 직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느꼈다.
많지는 않아도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이 있는 지금, 뉴저지로 이사를 가기 전인 지금, 3년간 일한 직장을 떠난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2023년 여름날, 남편을 미국에 두고 혼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안식기간이 시작됐다.